그를 보내야 하는 지금 너무나 허망하고 가슴이 아프다.

고 김경률 선수

우리 한국 당구계의 세계적 스타 김경률 선수는 35세라는 젊디젊은 나이로, 모든 당구인들의 기대를 뒤로 하고 비통하게도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 2004년, 한국 당구를 이끈 세계적인 스타 선수 출신인 이상천 대한당구연맹 전 회장이 51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위암으로 타계한 후, 이상천 전 회장의 후계자인 ‘한국 당구의 선구자’ 김경률 선수를 잃는 안타까운 일을 당했으니, 우리 당구인들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지난 2003년  SBS 당구대제전이 시작된 2월, 서울시당구연맹에 선수등록을 한 김경률 선수가 8월 열린 3차대회와 10월의 4차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예사롭지 않은 그의 기량을 주목한 필자는 그를 만나 ‘주목받는 신인 김경률 선수’라는 제목으로 그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김경률은 경남 양산 출생이고 고등학교 1학년 때에 당구를 치기 시작해 고교 졸업 때는 400점을 쳤다. 자신이 당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구선수의 길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으나, 그는 대학(양산대 식품공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런데 2002년 고향에서 가까운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어 3쿠션 부문의 황득희 선수와 이상천 선수가 나란히 금, 은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는 그의 당구에 대한 열의가 끓어올라, 부친의 직장을 따라 서울로 이주하게 된 김경률은 마침내 당구선수로서 인생의 길을 걸어보아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그가 2003년 2월에 서울시당구연맹에 선수 등록을 하게 되니, 김경률 선수의 생년이 1980년이므로 이때가 23세 때였다.

김경률 선수는 선수 등록을 한 첫 월례 정기평가전에서 서울시당구연맹의 기라성 같은 선배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8강에 올랐고, 3월의 두 번째 정기평가전에서도 8강에 다시 진입해 예사롭지 않은 그의 기량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SBS 당구대제전 3차대회에서는 김철민 선수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마침내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고, SBS 당구대제전 4차대회에서는 8강에 올라 꾸준함을 보여주었다. 이 4차대회 32강전 경기에서 김경률은 2세트째에 15점 단번치기에 성공하는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때까지 국내에서 몇 번의 15점 단번치기 기록은 있었으나, 선수 등록 1년 미만의 선수로는 초유의 기록이었으므로 당구계에서는 김경률 선수를 특별히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필자는 그 기사에서 김경률 선수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그는 당구선수로서는 가장 우람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신장 185cm에 체중 95kg의 신체조건은 한국 선수로는 드물게 보는 경우이다. 반드시 체격이 장대해야만 당구를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팔과 다리 길이는 길수록 좋을 뿐더러, 체력 소모가 큰 장시간의 경기 또는 계속 이어지는 경기는 체력이 좋은 선수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런 체력 조건은 파워 있는 당구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장점이 된다.”

이때 김경률 선수는 강남 대치동 포스코 사거리에 있는 ‘XQ당구클럽’에서 당구클럽 일을 봐주면서 그곳에 설치된 2대의 쉐빌롯 대대에서 여유 시간에 열심히 연습을 하며 기량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자가 그의 꿈에 대해 물었을 때, “언젠가는 때가 오면 당구클럽을 운영하면서 생활에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당구를 치면서 나가고 싶은 대회에 출전해 선수로서의 좋은 경기와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소박하게 대답하였다.

김경률 선수는 이후 많은 당구인의 기대에 부응하여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로 수직 성장하였다. 2006년 3월에 UMB-CEB 이집트 후르가다 3쿠션 월드컵에서 공동 5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7년 10월 멕시코 3쿠션 월드컵에서 4위, 2008년 1월 네덜란드 슬루이스낄 3쿠션 월드컵에서 공동 3위, 7월 포르투갈 포르토 3쿠션 월드컵 공동 3위, 그리고 2008 수원 3쿠션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09년에는 동 대회에서 다시 공동 3위에 올랐고, 2010년 2월의 터키 안탈리아 3쿠션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대망의 우승컵을 안았다.

그의 세계 랭킹도 2위까지 치솟았다.
김경률 선수는 당구를 통하여 세계에 이름을 떨쳤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도 구축했으며, 결혼을 해 가정도 이뤘다. 누가 보아도 그는 성공한 안정적인 스포츠 선수였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예상치도 않았던 이런 애석한 일이 일어났을까?

성실하고 밝고 매너 좋은 김경률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생을 마감하였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우리와 한 시대에 호흡을 같이 나누었던 한 사람의 유능한 인재, 불과 11년의 짧은 기간에 훌륭한 금자탑을 쌓은 불세출의 스타를, 그것도 35세라는 젊은 나이로 우리 곁에서 떠나 보낸다는 것이 너무 허망하고 가슴이 아프다. 고인이여, 영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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