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대한포켓당구연맹(회장 천남중)이 출범한 지 11개월 만인 지난 95년 11월에는 대만과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포켓볼대회에서 한국의 남녀 포켓볼 선수들이 본선에 오르며 세계 무대로 첫 도약을 시작했다.

세계포켓당구협회(WPA)의 주최로 대만에서 개최된 '95 대만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이열이 사상 최초로 8강에 올라 세계선수권대회 5위를 차지하는 대업을 달성했다.

또한, 박신영도 16강에 진출해 9위를 차지했고 이장수 역시 32강에 올라 17위를 하는 등 남자 포켓볼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 당구 역사상 처음으로 본선에서 활약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활약이 두드러졌던 선수는 이열이었다. 이열은 연이어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유서 깊은 '제28회 전일본 프로포켓빌리어드챔피언십(올재팬 챔피언십)'에서도 또 한 번 본선 16강에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한국 여자 당구선수들은 '95 대만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며 사상 처음으로 해외 원정 세계대회에 참가했고, 비록 1차전에서 고배를 들기는 했지만 막강한 실력의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겨루어 '0패'를 당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싸운 값진 경험을 얻었다.

이어서 일본 대회에도 출전해 세계 여자 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95년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95 전일본 프로포켓빌리어드챔피언십’ 대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 95 대만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

세계포켓당구협회(회장 요건 샌드맨)가 주최하는 '95 대만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가 11월 15~19일 대만에서 개최되었다. 

한국 선수단은 대한포켓당구연맹 임원 중에서 김영재 고문, 박병수 전무, 천기곤 선수국장, 심상배 사업국장, 이헌숙 사무장 등을 비롯하여 국내 선발전을 거쳐 선발된 박신영, 이열, 이장수 등 남자 선수 3명과 정양숙, 양순이, 현지원 등 여자 선수 3명이 참가했다.

이열은 본선 32강전에서 당대 최고의 포켓볼 선수였던 차오퐁팡(대만)과 대결했다.

차오퐁팡은 '93 서독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다음 해인 94년에는 남자 포켓볼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열은 차오퐁팡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32강전에서 13-6으로 승리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이열은 8강전에서 이 대회 준우승자인 달라스 웨스트(미국)에게 6-13으로 아깝게 졌지만, 사상 최초로 한국 국적의 선수가 세계포켓볼대회에서 본선 8강까지 진출하는 대업을 달성하며 한국 당구의 가능성을 세계무대에서 확인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박신영과 이장수도 이열과 함께 본선에 오르며 크게 활약했다. 박신영은 16강에서 이 대회 우승자인 올리버 오트먼(독일)에게 2-13으로 패했고, 이장수는 32강전에서 독일의 크리스천 라이머링과 접전 끝에 11-13으로 아쉽게 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95 대만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빌리어즈 자료사진

이 대회 우승은 93년 독일 오픈 포켓볼 챔피언인 올리버 오트먼이 차지했고, 준우승은 94년 유럽 대 미국 대항전 대표 선수이며 75년 및 85년 미국 오픈 14.1 포켓볼 챔피언이자 94년 WPA 포켓볼 세계랭킹 9위 달라스 웨스트에게 돌아갔다. 

여자부는 정양숙이 32강전에서 이 대회 우승자인 오스트리아의 게르다 호프스타터에게 2-11로 패했다.

양순이와 현지원도 미국의 네슬리 오하레에게 1-11, 한국계 미국 선수 자넷 리에게 2-11로 패해 탈락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원정 출전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급 미국 선수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한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여자부는 결승에서 당시 신예인 게르다 호프스타터(오스트리아)가 베테랑 비비안 비야레알(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95 대만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에서 5위에 오른 이열. 빌리어즈 자료사진


◼︎ 95 제28회 오사카 전일본 프로포켓빌리어드챔피언십

세계포켓당구협회 공인 대회로 95년까지 총 28회가 열린 '전일본 프로포켓빌리어드챔피언십'은 세계 각국의 유명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표적인 포켓볼 대회였다.

95년 1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이 대회에 한국은 김영재 고문을 단장으로 박신영, 이열, 이장수, 김원석, 한경용, 전병환, 김정식 등 8명의 남자선수와 양순이, 정양숙, 현지원, 이연희 등 4명의 여자 선수를 파견했다.

남자부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이 대회에 참가한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열은 예선전에서 보브 헌터(미국)를 9-3으로 누르고 본선 16강까지 진출해 95 대만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 8강에 이어 연속해서 세계대회 본선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남자부 결승은 일본 선수 두 명이 대결해 94년 세계포켓9볼선수권대회 우승인 오쿠무라 다케시(일본)가 우승을 차지해 우승상금 150만엔(한화 약 1500만원)을 받았다.

오쿠무라는 79년부터 82년까지 전일본 챔피언에 오른 선수로 94년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며 일본 최초의 포켓볼 세계챔피언이 되어 일본 포켓볼의 중흥을 이끈 인물이다.

한편, 여자부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도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치며 가능성을 보여주어 훗날 한국 여자 포켓볼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양숙은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 대회 준우승자인 일본의 가미무라 요코에게 6-7로 석패해 아깝게 본선 8강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정상급 선수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여 큰 주목을 받았다.

양순이도 예선 2차전에서 당시 일본 랭킹 1위 가지타니 아키미를 7-6으로 꺾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무대에서 한국 여자 포켓볼의 위력을 과시했다.

95년에 열린 포켓볼 세계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포켓볼의 가능성을 확인한 값진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포켓볼에 대한 투자를 끌어내며 한국 포켓볼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