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91년 12월 3쿠션 월드컵 서울대회 유치 이후 한국 포켓볼의 주춧돌을 놓았던 대한당구경기인협회 김영재 회장은 92년 6월에 임기 4년의 제2대 회장에 재선되었으나, 월드컵 개최의 경제적 후유증으로 93년 2월에 이명화에게 제3대 회장을 넘겨주었고 4월에 대한당구선수협회로 단체의 명칭이 바뀌면서 7월에 제4대 김문장 회장이 취임하게 된다.

93년 9월에 대한당구선수협회가 주최하는 '엑스포 93 한국그랑프리당구대회'가 대전에서 개최되었는데, 3쿠션(우수선수 부문, 프로선수 부문) 종목과 포켓9볼 종목이 열려 박신영이 포켓9볼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2월 1일에는 대한당구협회 주최, 대한당구선수협회 주관의 '제19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 겸 제2회 회장기 전국당구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려 국제식 3쿠션 부문에 배동홍, 포켓9볼 부문에 이열이 우승을 한다. 

이어서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독일의 캐니히스윈터 시에서 세계포켓볼협회(WPA)가 주최한 제4회 월드 포켓9볼 챔피언십에 한국 포켓볼 국가대표가 출전했다. 당시 대한당구선수협회 소속의 박병수, 김봉세 선수를 김영재 명예회장이 인솔했다.

이 대회는 세계 64강 남자선수와 32강 여자선수, 16강 주니어 선수 등 112명이 출전하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포켓볼 대회다.
 

93년 12월 독일의 캐니히스윈터시에서 개최된 WPA 주최 '제4회 월드 포켓9볼 챔피언십'에 한국 국가대표로 박병수, 김봉세가 출전했으나 예선 탈락했다. 사진은 시상식에서의 남자부 입상자들. 빌리어즈 자료사진


한국은 남자부에 두 선수가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해 한국으로서는 참가에 뜻을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계 포켓볼의 흐름이 미국에서 유럽 쪽으로 점차 기울며 이번 대회에서도 독일을 비롯해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그러나 남자부에서는 예상 밖에 92년 11월 한국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포켓9볼챔피언십 우승자 대만의 차오퐁팡이 독일 선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포켓볼에 아시아권이 근접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성과였다. 그리고 여자부에서는 미국의 한국 동포 자넷 리가 준우승을 했다.
 

94년 3월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1차예선 광주대회에 출전한 선수들과 대한당구선수협회 임원들. 아래 줄 가운데 김문장 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 94년 3차 예선 시리즈의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기획해 본선 SBS TV 중계

대한당구선수협회 제4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문장은 SBS TV와 제휴를 맺고 '한국당구최강전'을 시리즈로 개최하여 국제식 3쿠션 경기를 인기 스포츠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문장은 그 여세를 몰아 포켓볼 활성화를 위한 기획에도 착수하여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을 개최, '한국당구최강전'과 더불어 한국 당구의 균형있는 발전을 시도했다. 

1차 예선대회와 2차, 3차 예선대회를 거쳐 최종 선발된 8명을 본선에서 최강자를 가려 챔피언을 결정하는 방식의 경기를 치렀다.

예선은 승점제로 운영되어 1위 60점, 2위 45점, 3위 30점 등의 승점을 부여, 3차 예선의 성적을 종합하여 1~8위까지 최강전 진출권이 주어지고 최강전은 SBS TV로 중계되었다.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1차 예선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열(오른쪽)과 준우승자 김정수. 빌리어즈 자료사진


<1차 예선 광주대회>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의 1차 예선 광주대회는 94년 3월 17, 18일 2일간 광주시 황금동에 있는 월드포켓전용클럽에서 개최되었다.

30명의 선수들이 출전한 1차 대회는 8개 조로 편성된 예선 리그를 거쳐 각조 상위 2명이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다. 

경기 결과 4강에는 이열(서울), 박신영(대전), 김정수(서울), 임병연(광주)이 진출하여 결승전에서 이열이 김정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대만에 당구 유학을 다녀온 이열의 1차예선 우승은 앞해 12월의 제19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 포켓9볼 우승과 이 해 1월의 전국9볼챔피언십대회의 우승에 이은 연속의 쾌거로서 포켓볼의 ‘이열 시대’를 예고했다.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2차 예선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신영(오른쪽)과 준우승 한경용. 빌리어즈 자료사진


<2차 예선 대전대회>

94년 4월 7, 8일 2일간 대전시 홍도동 코아당구회관에서 2차 예선 대전대회가 열렸다. 1차 대회 때보다는 더 많은 선수들이 출전해 열기가 더 뜨거웠다.

선수들의 기량도 대회가 거듭될수록 날로 발전하여 경기 내용이 좋아져 관전자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8개 조에서 상위 2명씩을 선발하여 16강전을 치른 결과 8강에는 한경용, 김봉세, 정건표, 임종철, 박신영, 이열, 김영락, 임병연 등이 진출했다.

그리고 4강에는 한경용, 박신영, 임병연, 정건표가 올라 박신영이 임병연을 9-4로, 한경용이 정건표를 9-7로 꺾고 결승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결승에서 박신영이 두 번째 세트를 '런아웃(브레이크샷에서 9번 공까지 연속으로 포켓에 넣는 것)'하고, 네 번째 세트에서는 '홀인원(브레이크샷으로 9번 공을 포켓에 넣는 것)'까지 기록하며 5-0으로 앞선 끝에 9-4로 2차 예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앞해 12월 일본에서 당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한경용이 준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박신영은 1차 대회 준우승과 2차 대회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한국 포켓당구 최고 기량의 선수임을 입증하며 사실상 최강전 출전이 확정되었다.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에서 본선 진출권을 확보한 8명의 선수가 인증서를 받았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3차 예선 서울대회> 

94년 5월 11일, 12일 서울 퀸포켓전용구장에서 치른 3차 예선 서울대회는 최강전 진출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마지막 대회로 출전 선수 뿐만 아니라, 점차 확산일로에 있는 포켓당구 관중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본선 티켓 8장을 놓고 격돌한 선수들의 진지한 플레이에서 묘기가 나왔고 그때마다 관전자들의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3차 예선대회의 8강에는 다음의 선수들이 진출하여 최종 승자를 가렸다. 이장수, 박신영, 김정식, 정영화, 임종철, 김영락, 김봉세, 한경용.

8강전은 한경용이 김봉세를 9-6, 박신영이 임종철을 9-0, 이장수가 정영화를 9-6, 김정식이 김영락을 꺾고 준결승 대결을 펼쳤다.

준결승전에서는 박신영이 이장수를 9-6으로, 한경용이 김정식을 9-8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결승에 올라 2차대회와 같은 대결 구도가 되었다.

결과 역시 박신영이 2차대회와 마찬가지로 한경용을 9-7로 물리치고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진출자는 박신영, 한경용, 이열, 이장수, 김정수, 김봉세, 임종철, 임병연 등의 순위로 8명이 확정되었다. 

 

94년 6월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본선 경기 결승전에서 뱅킹하는 이장수(왼쪽)와 한경용. 빌리어즈 자료사진


◼︎ 94년 6월 15일 삼풍백화점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챔피언은 이장수 

세 차례의 예선대회를 거쳐 선발된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 본선 진출자 8명은 94년 6월 13일 서울 신사동 퀸포켓전용클럽에서 토너먼트로 경기를 벌여 삼풍백화점 아트홀 특설경기장에서 SBS TV 중계 가운데 치를 2명의 결승전 진출자를 가리는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이날 결승 진출전에서 1차 대회 6위, 2차 16강, 3차 대회 3위로 54점의 승점을 확보하며 4위로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던 이장수는 1차 대회 준우승자 김정수를 9-2로 제압하고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2, 3차 대회 우승자로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 받던 박신영은 임종철을 9-4로 이기고 이장수와 결승 진출권을 놓고 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또한, 2·3차대회 준우승으로 2위로 본선에 올랐던 한경용은 임병연을 9-4로 누르고 4강에 진출했으며, 6위 김봉세는 3위로 본선에 진출한 1차 대회 우승자 이열과 접전 끝에 9-7로 이기고 4강에 합류, 한경용과 결승 진출권을 다투게 되었다.

이장수와 박신영의 준결승전은 16세트까지 가는 치열한 경기를 벌이며 9-7로 이장수가 신승하여 결승 진출권을 획득했고, 한경용은 김봉세를 9-6으로 제압하며 결승전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강전 번외경기로 진행된 여성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정양숙(오른쪽)과 준우승자 양순이. 빌리어즈 자료사진


한편, 이날 최강전 결승전과 동시에 번외경기로 치를 여자부 결승 진출자 결정전도 치렀다.

참가 선수들의 풀리그로 진행된 경기에서 서울시지회 소속의 양순이, 정양숙이 나란히 결승 진출권을 확보했다.

양순이는 퀸스컵 아마추어포켓8볼대회에 출전했던 박선주(모델)를 5-4로 이기고 인천시지회의 이연희를 5-4, 지난 5월에 개최된 퀸스컵과 텐8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마추어 여자 포켓볼의 정상으로 우뚝 선 홍지희(학생)를 5-1로 각각 제압했다.

정양숙과 4승1패 동률을 이루었던 양순이는 세트 득실차에서 +5를 기록, +1을 기록한 정양숙을 제치고 1위로 결승 진출권을 획득했다.

양순이, 정양숙은 93년 11월에 대한당구선수협회 서울시지회(지회장 백정기) 소속 선수로 제24회 월례대회에 정식으로 참가하기 시작한 한국 포켓볼 여자 선수 등록 제1, 제2호다.

이들은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처음 당구를 배워 양순이(당시 26세·회사원)는 4구 지점 400점, 정양숙(당시 23세·경희대 체육학과 3년 재학중)은 300점의 지점으로 양귀문과 김철민의 지도를 받고 당구계에 정식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3월 16일 대회장소를 삼풍백화점으로 옮겨 열린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의 챔피언을 결정하는 최강자 결정전은 많은 포켓볼 팬들의 관심을 끌며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이장수(광주지회)와 한경용(서울지회)의 최강자 결정전 결승 경기는 예상 밖으로 이장수가 초반 승기를 잡고 그대로 이어가 한경용을 5-1로 가볍게 누르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장수는 세 차례 예선대회에서 무관의 불명예를 말끔히 씻어내고 한국 포켓볼의 정상을 정복했다.

이장수는 이날 결승전 두 번째 세트에서 홀인원을 기록하는 등 노련함과 원숙한 경기 운영을 하여 관중석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번외경기로 진행된 한&#12539;일 친선 포켓9볼 경기에 참가한 일본의 쇼네 교코. 빌리어즈 자료사진


번외 경기로 진행된 양순이와 정양숙의 여자부 최강자 결정전은 경기초반 양순이가 2-0으로 앞서나가 우승을 눈 앞에 두었으나 정양숙이 2-3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 

이어서 한·일 친선 남녀 포켓볼 경기가 열렸는데 남자는 한국이, 여자는 일본이 각각 승리했다. 

일본 남자선수로는 일본 프로 랭킹 1위로 88-89 인터내셔널 9볼, 14-1 랙 게임 챔피언과 91년 세계선수권대회 3위인 토다 타카시와 박신영이 대결을 펼쳐 박신영이 5-1로 승리를 거두었다.

여자선수는 일본 여자 프로선수 랭킹 3위로 서일본여자프로투어 제3전 우승과 동일본여자프로투어 제3전 우승 등을 차지한 당대 최고의 포켓볼 선수인 소네 교코와 인천지회 소속의 이연희가 대결하여 5-1로 일본 선수가 승리했다. 

이날의 남자 포켓볼 최강전과 여자 포켓볼 최강전, 한·일 친선 포켓볼 경기는 SBS TV가 모두 녹화로 중계함으로써 한국 포켓볼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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