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당구연맹 집행부의 비리에 반발하며 지난 2008년부터 선수생활을 중단한 세미 사이그너가 7년 만인 지난 2014년 9월 포르토 당구월드컵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사이그너는 이후 3년 10개월의 험난한 과정 동안 한 계단씩 밟고 올라와 마침내 '2018 블랑켄베르크 3쿠션 당구월드컵' 결승에 진출했다. ⓒ 코줌 스튜디오


[빌리어즈=김탁 기자] '돌아온 황태자' 세미 사이그너(53·터키)가 11년 만에 3쿠션 당구월드컵 결승에 진출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지난 2014년 9월 포르토 당구월드컵부터 7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3쿠션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사이그너는 복귀 3년 10개월 만에 마침내 정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2007년 6월 그리스에서 열린 '2007 코르푸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세계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가끔 아지피와 같은 이벤트 경기에 초청을 받아 출전한 것을 제외하고, 월드챔피언십과 당구월드컵 등의 정식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터키의 간판선수였던 사이그너는 터키당구연맹 전 회장과 집행부의 횡포에 반발해 지난 2007년을 마지막으로 '선수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무려 7년 동안이나 3쿠션 세계대회 출전을 보이콧했다.

사이그너는 세계대회 출전 보이콧을 하기 전까지 당구월드컵에서 우승 6회, 준우승 6회, 4강 14회 등의 성적을 거둔 명실공히 세계 최강자의 반열에 올라 있는 선수였다.

3쿠션 세계무대를 독식한 '사대천왕' 토브욘 블롬달, 딕 야스퍼스, 다니엘 산체스, 프레데릭 쿠드롱 등에 이어 정확히 다섯 번째 손가락에 꼽혔다.

당구월드컵 우승 기록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다. 블롬달(44회 우승), 야스퍼스(22회 우승), 쿠드롱(19회), 산체스(12회) 등 4명 외에는 '당구전설' 레이몽 클루망이 아홉 번 우승을 차지했고, 사이그너가 그 뒤를 이었다.

현재는 세계랭킹 2위 에디 멕스가 총 여덟 번 당구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사이그너보다 한 단계 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2007년 이전까지 멕스는 단 2회 우승에 그쳤었다.

사이그너는 99년 서울에서 열린 당구월드컵 4강에 오른 그는 한국 당구 팬들에게도 '세미 시그너'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세계대회 보이콧을 선언했을 때에도 많은 당구 팬들은 '사이그너의 복귀'를 기다리며 수년 동안 계속해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 사이그너, 복귀 1년 만에 자력 월드컵 본선 진출

지난 2014년 8월에 한국을 방문해 다음 달 열리는 포르토 당구월드컵부터 복귀를 선언했던 사이그너는 당시 <빌리어즈>와의 인터뷰에서 "7년 동안 큐를 아예 놓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나는 50대이지만, 20대의 몸을 갖고 있지 않은가"라고 농담까지 건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는 "물론 클럽에서 공을 치는 것과 정식 경기장에서 시합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어서 감각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랭킹을 쌓기 위해 2년 정도는 예선전부터 뛸 것이다"라는 말로 향후의 여정을 예상하기도 했다.

사이그너의 예상대로 실전 감각을 찾고 다시 왕년의 기량을 보여주기까지 그는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복귀전인 2014 포르토 대회에서는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직행했고, 32강전에서 스페인의 데이비드 마르티네즈에게 32이닝 만에 40:28로 승리했다.

16강전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정식대회에서 대결한 블롬달에게 25이닝 만에 34:40으로 패해 탈락했다.

상징적인 복귀전에서 우려했던 것만큼 기량이 노쇠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곧바로 다음 달에 열린 2014 구리 당구월드컵에서는 최종예선에서 2패를 당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구리 대회부터는 예선 1라운드(PPPQ)부터 출전했다. 예선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2점대를 육박하는 평균득점력을 보여줘 당구 팬들은 그가 다시 톱클래스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이후 사이그너는 쉽지 않은 복귀 과정을 거쳐야 했다. 1년 뒤 구리 당구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최종예선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2014년 말 그가 복귀 후 세 번째 출전한 당구월드컵 이집트 후르가다 대회와 네 번째 2015 룩소르 대회에서 사이그너는 모두 예선 3라운드(PQ)에서 탈락했고, 포르토와 호찌민 대회까지 사이그너는 모두 예선 탈락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경기 감각을 익히던 사이그너는 마침내 2015년 9월 구리에서 열린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1.500의 평균득점을 기록하며 마침내 최종예선의 벽을 허물었다.

복귀 후 처음 월드컵 본선에 자력으로 진출에 성공한 것.

사이그너는 어렵게 진출한 32강전에서 조재호(서울시청)에게 연속 15득점을 얻어맞아 9이닝 만에 17:40으로 패하긴 했지만, 첫 자력 월드컵 진출이라는 값진 경험을 쌓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이그너는 서서히 예전 기량을 경기 중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다음 월드컵에서는 와일드카드로 32강에 진출해 베트남의 쩐뀌엣찌엔에게 23이닝 만에 35:40으로 패했다.

그러나 다음 후르가다 대회에서도 사이그너는 예선 3라운드와 최종예선을 통과하고 두 번째 본선 자력 진출에 성공했다.

사이그너는 2015 후르가다 당구월드컵 32강전에서 산체스와 '세기의 대결'을 벌여 19이닝 만에 29:40으로 참패했다.
 

2015년 9월 열린 구리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복귀 후 자력으로 처음 본선에 오른 사이그너는 2016년 2월 부르사 당구월드컵에서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출전해 32강에서 조재호를 18이닝 만에 40:29로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2016년 2월 부르사 당구월드컵에서 처음 16강 진출...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4강에 오르기도

최종예선의 벽을 넘고 나니 이번에는 월드컵 32강의 관문이 녹록치 않았다.

사이그너가 아무리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적인 선수였다고 해도 다시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 계단씩 쌓아 올라가야 했다.

2016년 2월 터키 부르사에서 열린 당구월드컵에 사이그너는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직행해 처음 32강 관문을 넘어섰다.

사이그너는 32강전에서 다시 대결한 조재호에게 18이닝 만에 40:29로 승리를 거두었다.

복귀 후 처음 16강에 올랐지만, 다음 상대는 블롬달이었다. 16강전에서 경기 막판 블롬달을 막지 못한 사이그너는 19이닝 만에 31:40으로 아깝게 졌다.

2015년 말까지 세계랭킹 35위까지 올라간 그는 부르사 월드컵 이후 26위까지 올라 2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2016년 당구월드컵에서 첫 대회에서 16강에 오르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사이그너는 나머지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룩소르와 호찌민에서 연달아 최종예선에서 탈락했고 포르토에서는 최종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했지만, 32강전에서 쿠드롱에게 23이닝 만에 38:40으로 졌다.

다음 한국 구리 당구월드컵과 프랑스 라볼에서도 계속해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런데 사이그너는 2016년 11월에 열린 그해 월드 3쿠션 챔피언십에서 전성기 때의 기량을 뽐내며 4강에 오르는 활약을 펼쳤다.

지난 2003년 월드 3쿠션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이후 무려 13년 만에 월드 챔피언십 4강에 진출한 것.

사이그너는 예선 리그전에서 2.285의 평균득점을 기록하며 종합순위 1위에 올랐고, 16강전에서 무랏 나시 초클루(터키)에게 19이닝 만에 40:25로 승리, 이어서 8강전에서는 제롬 바베용(프랑스)에게 40:34(40이닝)로 힘겹게 승리를 거두었다.

준결승전에서 김행직(전남)에게 16이닝 만에 18:40으로 패해 결승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복귀 후 잠시 주춤하던 사이그너에게는 반가운 단비와 같은 경험이었고 세계랭킹도 17위까지 껑충 뛰었다.

기세를 몰아 한 달 뒤에 열린 이집트 엘구나 당구월드컵에서 그는 최종예선을 통과하고 본선 32강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32강전에서 블롬달에게 21이닝 만에 34:40으로 패해 발목이 잡히긴 했으나, 사이그너의 감각이 점점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이그너는 2016년 세게3쿠션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올라 지난 2003년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 13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2017년 룩소르 당구월드컵에서 8강 진출

2017년 첫 대회인 부르사 당구월드컵에서 사이그너는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직행해 멕스에게 21이닝 만에 17:40으로 패해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두 달 뒤에 열린 룩소르 당구월드컵 32강전에서 마침내 블롬달을 30이닝 만에 40:24로 꺾고 또 한고비를 넘어섰다.

복귀 후 블롬달에게만 16강전에서 2번, 32강전에서 1번 등 3패를 당했던 사이그너가 드디어 블롬달을 꺾고 비상했다.

16강전에서 잔 체팍(터키)을 22이닝 만에 40:22로 꺾은 사이그너는 복귀 이후 처음으로 당구월드컵 8강 무대를 밟았다.

8강전에서 조명우(한체대)에게 16이닝 만에 34:40으로 패해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또 한 계단을 올라서는 성과를 거두었다.

다음 호찌민 대회에서 사이그너는 평균득점 1.904로 최종예선을 통과했고, 32강전에서는 응웬꾸억응웬(베트남)에게 23이닝 만에 33:40으로 아깝게 졌다.

포르토 대회에서는 최종예선에서 탈락했지만, 한국 청주에서 열린 당구월드컵에서 사이그너는 평균득점 2.222를 기록하면 종합순위 1위로 본선에 오르는 등 크게 활약했다.

청주 대회 32강전에서는 강인원(충남)에게 22이닝 만에 40:39로 승리했지만, 16강전에서 복귀 후 첫 대결한 야스퍼스에게 20이닝 만에 30:40으로 패했다.

다음 프랑스 라볼 대회 최종예선을 통과하고 다시 한번 본선 32강에 오른 사이그너는 블롬달에게 20이닝 만에 29:40으로 패했고, 마지막 엘구나 대회에서는 최종예선 관문을 넘지 못했다.
 

사이그너는 올해 첫 대회인 안탈리아 당구월드컵에서 복귀 후 두 번째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벨기에 블랑켄베르크 3쿠션 당구월드컵 준결승전에서 그리스의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로스에게 19이닝 만에 40:39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11년 만에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게 되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2018년 첫 안탈리아 대회부터 8강 진출... 벨기에서 11년 만에 결승행

복귀 후 세 시즌 동안 한 계단씩 올라가며 월드컵 8강까지 올라간 사이그너는 올해 심상치 않은 출발을 보였다.

첫 대회 안탈리아 당구월드컵 32강전에서 최성원(부산체육회)을 25이닝 만에 40:28로 꺾은 사이그너는 16강전에서 하비에르 팔라존(스페인)에게 17이닝 만에 40:20으로 승리하고 복귀 후 두 번째 8강에 진출한 것.

8강에서도 무랏 나시 초클루(터키)에게 29이닝 만에 39:40으로 아깝게 졌지만, 한층 더 단단해진 경기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 달 뒤 열린 호찌민 당구월드컵에서도 최종예선을 통과하고 32강전에서 즈엉안부(베트남)와 승부치기까지 가는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벨기에 블랑켄베르크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사이그너는 11년 만에 결승 무대를 밟았다.

사이그너는 지난 2014년 처음 복귀를 알린 <빌리어즈>와의 인터뷰에서 '랭킹에 없어서 예선부터 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나'라는 질문에 "한 2년 정도는 예선부터 뛰어야 한다. 너무 오래 떠나 있어서 오히려 예선부터 뛰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 3년 10개월 동안 예전의 명성을 모두 잊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예선 1라운드에서 2라운드, 3라운드, 그리고 최종예선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머지않아 본선 무대에 이름을 올렸고, 결국 그와 당구 팬들의 간절한 바람대로 11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

사이그너는 계속된 실패에 부딪혀도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씩 전진해 마침내 월드컵 챔피언에 도전하는 마지막 관문 앞에 서게 되었다.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