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 대한당구경기인협회, 어려운 여건에서 세계포켓볼대회에 선수 출전시키고 전국포켓볼대회도 개최

한국의 초창기 포켓볼은 지역적으로는 광주 지역이 가장 앞서 있어서 각종 대회나 국제대회 파견 선수발대회에서 우세를 차지했고 그다음이 부산, 대전이었다.

서울은 포켓볼이 캐롬 부문에 비해 다소 늦게 발전했다. 그런데 대한당구경기인협회가 창립된 후 서울시지회 선수들이 낙후된 포켓볼 수준을 향상시켜 세계의 당구 흐름에 한발 다가서자는 취지 아래 91년 6월에 지회 산하에 로테이션분과를 설치했다.

창립 발기 선수는 김상윤, 박병수, 민평기, 김석윤, 변경환, 정동희, 김원오 등이었다.  

이들은 검정감색의 복장을 유니폼으로 통일하여 입고 모임을 상징하는 마크를 제작하여 가슴에 닮으로써 일체감을 나타내었다.
 

대한당구경기인협회 서울시지회 소속 선수 7명이 91년 6월에 로테이션분과를 만들어 낙후된 포켓볼 수준 향상에 나섰다. 검정감색의 유니폼에 모임을 상징하는 마크를 가슴에 부착, 일체감을 나타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모임의 간사인 박병수의 퀸당구회관(강남구 논현동 소재)에서 6월 17일 첫 월례대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매월 1회 정기적으로 평가전을 갖고 앞으로 포켓볼에 자질이 있는 사람들을 일정 평가를 거쳐 회원으로 입회시키기로 했다.

9월 1일에는 서울 논현동 퀸당구회관에서 11월 15~18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타이베이국제오픈포켓9볼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을 가졌다.

대전, 광주, 서울에서 총 18명이 참가하여 9명씩 2개 조로 나뉘어 9세트 5선승제 토너먼트로 열린 경기에서 김원오(서울), 박신영(대전), 정건표, 김원석, 임병연( 이상 광주) 등 5명이 선발되었다.

이듬해인 92년 2월 26일에는 대한당구경기인협회가 포켓당구의 활성화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앞으로 일정 주기마다 연속 개최를 목표로 한 '제1회 전국포켓9볼챔피언십대회'를 퀸당구장에서 열었다.

 

제1회 전국포켓9볼챔피언십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결승에 오른 이장수(왼쪽)와 김원석의 뱅킹 장면. 빌리어즈 자료사진


이 대회는 4월 1~5일까지 대만에서 개최되는 세계포켓당구협회(WPA) 주최의 세계포켓9볼챔피언십 대회와 4월 10~12일 아시아포켓당구연맹(APBU) 주최로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는 도쿄오픈포켓9볼대회에 참가할 한국 대표 선발을 겸해서 열렸다.  

서울, 대전, 광주, 부산, 울산, 인천 등 전국에서 19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4개 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로 8강을 가렸는데, 각 지역 간 실력 편차를 보여 광주지역이 과반을 차지했다.  

4강에는 김원석(광주), 권홍탁(울산), 이장수(광주), 한경용(서울)이 진출하여 김원석이 권홍탁을 이기고 이장수가 한경용을 꺾어 광주선수회 소속 선수끼리 대결한 결승전에서 이장수가 김원석에게 승리, 한국 대표로 선발되었다. 3위는 한경용이 차지했다.  

대표로 선발된 이장수는 89년 6월의 5도시 대항전 국제식 3쿠션 부문에서 우승함으로써 캐롬 당구에 장래가 촉망되었지만, 그는 이후에 뜻한 바가 있어 포켓볼로 전향했고 비디오를 보며 독학으로 포켓볼에 전념하여 전국대회 우승과 함께 세계 대회 참가 자격을 획득했다.  

4월 1~5일 대만의 대북체육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WPA 주최의 ’92 세계 포켓9볼 챔피언십 대회에는 세계 20개국에서 102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남자(64명), 여자(32명), 주니어(16명) 3개 부문으로 치러졌다.

상금은 남자 8만8400달러, 여자 3만4600달러 등 총 12만3000달러를 걸었다. 한국에서는 박병수(APBU 이사)를 단장으로 김원석과 박신영이 출전했다.

두 선수는 예선전에서 미국의 짐 렘퍼와 로저 그리피스에게 각각 3-1로 패해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러나 1세트씩을 따는 등 경기 내용면에서는 세계적인 선수와 견주어 손색없는 경기를 펼침으로써 앞으로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제1회 전국포켓9볼챔피언십대회 겸 WPA 주최의 92 대만 세계포켓9볼챔피언십대회 및 APBU 주최 도쿄오픈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이 92년 2월 26일에 서울 논현동 퀀당구장에서 개최되었다. 사진은 참가한 선수와 임원들의 기념 촬영. 김영재 회장이 앞줄 중앙에 앉아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4월 10~12일 일본에서 개최된 아시아포켓당구연맹(APBU) 주최의 도쿄 오픈 대회에는 김영재 단장(대한당구경기인협회 회장) 인솔로 박병수, 김웅수, 한경용, 박신영, 김찬중, 김홍식, 권홍탁 등 7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회 마지막 날인 4월 12일에 APBU 이사회가 열렸는데 한국에서는 APBU 부회장 김영재와 이사 박병수가 참석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WPA 총회에 관한 보고와 지난 1월 25일 스위스에서 창립된 세계스포츠당구연맹(WCBS)의 올림픽 종목 채택 추진에 관한 보고가 있었다.

특히 이날의 의제 중 한국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APBU가 승인하지 않는 대회는 APBU 선수는 출전할 수 없다'는 제안으로서 이 제안은 구체적 조항이 결정될 때까지 유보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이 안이 확정되면 모든 포켓볼 국제대회에는 대한당구경기인협회를 통해서만 출전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어 그 귀추가 주목되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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