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제5회 5도시대항당구대회에서 포켓9볼이 종목으로 채택되어 경기를 치렀다. 사진은 왼쪽부터 2위 박신영(대전), 3위 장지열(대구), 1위 유성대(부산). 빌리어즈 자료사진


■ 88년 9월 열린 제5회 5도시 대항당구대회에서 포켓9볼을 종목으로 채택

당구선수들이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산하에 소속되어 있던 87년 3월에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지역의 당구선수회가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도시대항 당구대회를 각 도시를 번갈아가며 7회 동안 개최했다.

제1회 대회를 대구를 시작으로 제2회를 광주(87년 6월), 제3회를 인천(87년 12월), 제4회를 부산(88년 4월), 제5회를 대전(88년 9월), 제6회를 대구(89년 6월), 제7회를 광주(89년 12월)에서 열었다.

각 지역 선수회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국내식 3쿠션과 국제식 3쿠션으로 대결했는데, 제5회 대회와 제6회 대회에서는 새 종목으로 포켓볼(9볼)이 추가되었다.

88년 9월 1~2일 대전시의 유락당구장에서 개최된 제5회 대회에는 모두 42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며, 포켓9볼 부문에는 13명이 참가했다.

부산선수회에서 이성우, 김종구, 유성대, 대구선수회에서 장지열, 김명섭, 광주선수회에서 정병완, 염규동, 정광표, 인천선수회에서 김철수, 김만영, 허열, 대전선수회에서 김용수, 박신영 등이 출전했다.

2대의 포켓볼 당구대에서 동시에 진행된 경기는 패자부활전이 있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렸다.

대회 결과 우승은 유성대(부산), 준우승은 박신영(대전), 3위는 장지열(대구)이 차지해 상장·트로피·상품을 수여받았다. 

제5회 5도시 대회 포켓9볼 부문에서 2위에 입상한 박신영은 그해 11월 일본에서 개최된 제21회 전일본프로포켓볼대회에 자비로 출전했다.

당구를 친 지 4년, 포켓볼을 시작한 것은 1년에 불과했지만 그는 포켓볼의 매력에 빠져 일본의 선진 포켓볼을 접하고 싶었다.

그의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박신영은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고 밝혔다. 박신영이 이 대회에 참가한 것이 한국 포켓볼 선수가 국제 대회에 출전한 최초의 기록으로 보인다. 
 

89년 6월 대구시 동대구호텔에서 개최된 제6회 5도시대항당구대회에서도 포켓9볼 종목이 채택되었으며, 포켓볼 선수 16명이 출전했다. 우승은 김철수(인천)가 차지했으며 준우승 박종철(광주), 3위 김성철(대전)이 올랐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6회 5도시당구대회는 89년 6월 27~28일 대구시 동대구호텔에서 개최되었으며, 국제식3쿠션, 국내식3쿠션, 포켓볼 종목에 47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포켓볼 종목에는 16명이 출전했는데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장지열, 우종현, 정병악, 김명섭(이상 대구선수회), 정정우, 김철수, 박승칠(이상 인천선수회), 박신영, 김성철, 김종호(이상 대전선수회), 안지수, 구병식, 홍영철(이상 부산선수회), 박종철, 정광표, 정홍조(이상 광주선수회) 등이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경기는 예선 7선승제, 패자부활전에서는 준결승전까지 5선승제, 결승전 7선승제로 우승자를 가렸다.

경기 결과 우승 김철수(인천), 준우승 박종철(광주), 3위 김성철(대전)이 차지했으며 트로피와 훈련보조비, 부상을 받았다.

포켓볼 결승전 경기는 참가 선수들과 관중들의 많은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박종철이 승자 결승에 진출한 김철수를 이김으로써 재경기가 치러졌는데, 6-2로 1세트만을 남기고 있던 김철수가 박종철에게 6-5까지 추격을 당하다가 7-5로 어렵게 승리한 데다가 이 경기의 결과가 인천선수회에 종합우승을 안겨주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89년 8월 대만에서 개최된 한·중·일 친선 포켓볼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표 김철민. 빌리어즈 자료사진


■89년 8월 대만에서 개최된 한·중·일 친선 포켓볼 대회에 김철민 등 5명의 선수가 참가

89년 8월 25~27일 대만 타이베이 중심가 송정리에 위치한 국제당구구락부에서 한국, 대만, 일본 선수들이 참가한 포켓볼 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국에서는 국내 예선을 거쳐 선발된 김철민, 김석윤, 김원오(서울)와 박승칠(인천), 정건표(광주) 등 5명이 대표로 출전했다.

한국이 비록 친선대회일망정 정식의 선발전을 치러 대표를 뽑아 외국에 파견한 최초의 포켓볼 국제대회 참가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친선경기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의 성적은 부진했다. 

이 친선대회에 참가한 김철민은 귀국해 <월간 당구(현 빌리어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선수들의 수준차를 절실히 깨달으며 한 수 배우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 이번 대만 방문에서 절실히 느낀 바로는 타이베이 어느 당구장을 들어가봐도 10세 또래의 어린 소년들이 어른들과 함께 큐를 잡고 경기하는 것을 무척 인상깊게 보았다. 앞으로 한국 선수들이 실력이 향상되려면 꾸준한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남녀노소 부담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급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당구가 됨으로써 대중 속에 확산되고 기량도 조기에 닦아질 것이다"

포켓볼 종목의 친선대회가 끝나고 같은 장소에서 가진 예술구 시범에서는 오히려 한국 선수들이 대만과 일본 선수들의 기량보다 앞서 있어 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대회가 끝난 후 여러 당구장에서 한국 선수들을 초청해서 예술구 시범을 요청했는데 대만의 각 TV와 신문들의 열띤 취재보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89년 10월 '체육부 이관기념 전국당구선수권대회’가 부산 KBS홀에서 102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이 대회에 포켓9볼 종목 선수 32명도 함께 참가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89년 10월 ‘체육부 이관기념 전국당구선수권대회’에 포켓볼 선수 32명이 참가

한국 당구는 89년 7월 1일로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종전 당구가 유기로 치부되어 보건사회부 산하에서 당구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당구장이 체육시설로 인정되어 체육청소년부로 이관되는 「체육시설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이고 뜻깊은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당구장 경영자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부산지회가 주최하고 대한당구협회 선수국이 주관하는 '체육부 이관기념 전국당구선수권대회'가 89년 10월 17일, 18일 2일간 부산 KBS 공개홀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이 대회가 대한당구협회 부산지회 주최로 열린 것은 특별한 뜻이 있다. 당구가 체육부로 이관된 결정적인 원동력은 부산지회가 국회에 제출한 청원서를 받아들여 당구를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한 것에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전국대회에는 각 지역에서 선발된 102명의 선수가 고장의 명예를 걸고 참가했다. 종목은 국제식3쿠션(대대)에 35명, 국내식3쿠션(중대)에 35명, 포켓볼에 32명이 출전했다. 

9볼 경기로 치러진 포켓볼은 토너먼트로 진행되었으며 예선 7선승제, 패자부활전에서는 5선승제. 패자 4강전부터는 7선승제로 우승자를 가렸다.
 

‘체육부 이관기념 전국당구선수권대회’ 포켓볼 부문 우승자 박신영이 대회장으로부터 상패를 받고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경기 결과 승자전 우승에 박신영(대전)이 올랐고 패자전에서는 김철민(서울)이 진출해 결승전을 치렀으나 패자조의 김철민이 5-7로 이겨 재경기를 한 결과 박신영이 7-4로 김철민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3위에는 박승칠(인천)이 올랐으며 김상윤(서울)은 감투상을 수상했다. 

이번 대회는 포켓볼 출전 선수들의 기량이 미숙한 탓에 경기 시간이 많이 걸려 결승전 경기를 9선승제에서 7선승제로 치르기도 했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는 지고 있던 선수가 이기는 극적인 역전 경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한 예로 김철수(인천)와 김석윤(서울)의 경기에서는 김철수가 4-0으로 이기고 있다가 김석윤이 눈 깜짝할 사이에 4-7로 경기를 뒤집고 승리해 관중들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승자 박신영은 앞해 9월에 있었던 제5회 5도시 대항당구대회 포켓9볼 종목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다시 우승함으로써 그의 앞날에 기대를 걸게 했다.
 

89년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제22회 전일본 챔피언십 프로 포켓(9볼)대회에 참가했다가 귀로에 한국을 방문한 대만 선수단. 빌리어즈 자료사진


■ 89년 11월 제22회 전일본챔피언십 프로포켓(9볼)대회에 참가한 대만 선수단, 귀로에 한국에서 친선경기 가져 

89년 11월 16~19일 4일간 일본 오사카의 오사카체육빌딩에서 제22회 전일본챔피언십 프로 포켓(9볼) 대회가 주최국 일본을 비롯한 미국, 멕시코, 서독,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한국 등 8개국에서 109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 대회는 그 연조가 말해주듯 권위있는 대회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앞해에 박신영이 처음으로 참가한 데 이어 이번 대회에 김철민, 정건표가 대표로 참가했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세계 포켓볼 선수들과 경기를 가짐으로써 그들의 실력을 알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익한 나들이었다. 

이 대회가 끝나고 대만 선수단이 귀로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포켓볼 선수들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중화직업당구협회 회장이며 중화민국당구협회 부이사장 린전환(林正晃) 단장이 인솔하는 16명의 선수단을 한국의 김석윤, 배동홍 두 선수가 자비를 부담하여 최근 대만을 방문했을 때의 환대와 편의를 제공해준 데 대한 보답과 우리보다 앞서 있는 대만 선수들의 기량을 한국 포켓볼 선수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대만 선수단의 장기요, 진준웅은 아시아권에서는 단연 톱 클래스로서 일본에서 개최되는 대회에는 예선전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참가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를 부여하고 경비도 일본당구협회에서 부담해주고 있는 선수다. 여자선수로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주설리와 3위 류신메이가 포함되었다. 

11월 22일 서울 구로구 독산동의 김석윤이 운영하는 허리우드당구장에서 한국 남자선수 4명과 대만 남자선수 4명이 대전을 가져 모두 대만 선수들이 승리했고, 대만 여자선수 1명과 한국 남자선수 1명이 대결한 경기는 한국이 승리했다. 대만 선수들의 포켓볼 수준은 역시 한국보다 한 수 위임을 실감나게 하는 경기 내용이었다. 
 

89년 11월 대만선수단을 인솔하고 한국을 방문한 린전환 단장(중화직업당구협회 회장·중화민국당구협회 부이사장 : 왼쪽)이 본지와의 대담에 앞서 필자와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통역을 맡은 화교사업가 자오렌싱(조연흥). 빌리어즈 자료사진


그리고 이번 대만 선수단의 한국 방문에는 친선경기를 가진 것 외에도 또 다른 큰 성과가 있었는데, 필자가 린전환 단장을 만나 「대만 당구계의 현황을 듣는다」는 주제로 장시간에 걸쳐 대담을 하고 그 기사를 <월간 당구(빌리어즈)> 89년 12월호에 게재한 일이다.

11월 24일 서울렉스호텔에서 화교 사업가로서 한국과 중국 당구계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자오렌싱(조연흥, 현 대한당구원로회 회원)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대만은 전에는 4구를 쳤으나 이후 중대에서 스누커를 치다가 지금은 포켓볼이 주 종목으로 되었다. 3쿠션은 전혀 치지 않는다. 대만 인구가 약 2000만명인데 포켓볼을 치는 사람은 몇백만 명이다.

린전환 단장이 선수들의 단체인 중화직업당구협회 회장과 당구장 업소 단체인 중화민국당구협회 부이사장을 겸해서 맡고 난 후 대만의 당구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크게 발전되고 확산되었다.

현재 세계의 포켓볼 수준은 포켓볼의 발상국 미국이 단연 1위이고 필리핀이 2위, 3위가 일본과 대만인데 대만이 일본에 비해 약간 뒤지는 정도다.

1년 전부터 여성들의 당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급격히 발전해 국제대회에서 입상까지 하고 있다.

자오렌싱의 주선으로 한국과 10년 전부터 교류를 시작했지만 한국과 대만의 당구 주종목이 다른 것이 문제지만 한국에서도 포켓볼을 치려는 선수들이 계속 늘고 있어 최근들어 교류가 빈번해지는 추세다" 

린전환 단장은 한국 선수들이 앞으로의 추세를 보아 포켓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배우기를 희망한다면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린전환 단장의 당시 방한을 계기로 한국 포켓볼은 이후 아시아포켓볼연맹(APBU)에 가맹하게 되고, 김영재 전 대한당구연맹 회장이 APBU 부회장으로 중책을 맡으면서 한국 선수들의 세계대회 출전과 대만 당구 유학이 이루어져 특히 여자 선수들이 세계 톱으로 도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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