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떤 스포츠 종목도 변하지 않는 룰이란 없다. 급변하는 정세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포츠 경기에서의 시대적 요구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다룰 칼럼 내용 중에 변하지 않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지금 적용되고 있는 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과 주관적인 견해가 다소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필자 주>
 

빌리어즈 자료사진


어떤 대회를 치르던지 심판 판정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심판의 판정이 간혹 잘못 이루어지는 이유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심판의 역량 부족으로 경기의 흐름을 방해하게 되는 '오판'

당구에 대해 나날이 관심이 높아져 감에 따라 당구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도 당구 심판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포츠 당구를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심판이 되려고 하는 당사자는 '신입심판'으로서 많은 노력과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당구 종목 심판은 봉사직에 가까울 정도의 '열정페이'로 최소한의 보상을 받는 직업이다.

따라서 입시공부를 하듯 당구에 대한 공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취미 생활처럼 심판 공부를 하게 된다. 물론 현실이 이렇게 때문에 이를 두고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쉽게 당구심판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당구심판은 경기가 벌어지는 장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고, 때로는 TV에 생중계로 투입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선수와 관중들과 호흡하며 당구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매우 매력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당구심판이 되려는 사람들의 지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심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시스템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권익중 심판위원장은 "올해부터 심판자격증 취득 기준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라질 것이며, 난이도 또한 상향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기준과 난이도가 높아져 강화된 심판의 역량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에서는 지난해 시범적으로 10개 종목(73명)에 한정해서 상임심판제도를 운영했다.

심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운영된 상임심판제도는 좋은 평가를 받아 올해 4개 종목(27명)을 추가하여 총 100명으로 상임심판을 확대시켰다.

대한체육회 상임심판은 11개월 계약직이기는 하나, 월 30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대회마다 파견되어 각종 지원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관심있고 재미있는 일을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서 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심판 역량 또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합당한 보상이 있다면 자연스러운 '경쟁'으로 수준 높은 판정과 원활한 경기 운영을 공부하는 심판은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되어 경기 흐름을 방해하는 오판 또한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올해 확대되는 4개 종목에 당구가 포함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구도 전문 심판 육성을 위한 시스템을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둘째, 명백히 잘못 판정한 '오심'

심판도 심판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오심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물론 심판에게 오심은 피해갈 수 없는 화살이 되어 가슴에 꽂힌다.

몇몇 다른 종목에서 뒷돈을 받고 오심을 판정하여 문제가 되는 심판들도 간혹 볼 수 있지만, 당구 종목은 아직 그러한 유혹이 오가진 않는다.

그러나 항간에 떠도는 것처럼 당구의 프로화가 실현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심판의 '양심'이다.

오심은 여러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심판 스스로 자신의 판정이 옳다고 과신하는 경우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선수의 어필이 묵살되기도 한다. 심판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실수를 하게 된다.

신이 아닌 이상 이러한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데, 심판 스스로 자신의 판정이 옳다고 지나치게 믿는 경우에 내려진 오심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 심판이 선수보다 위에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

분명히 심판에게 ‘권위’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흔히 이를 두고 '심판의 권위'라고 표현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심판이 아닌 판정에 대한 권위다.

이러한 심판의 권위는 내가 심판이 됨으로써 동시에 얻게 되는 '권한'이 아니라, '남'이 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권위'다. 그래서 심판은 조력자이며 조율자다.  

당구심판 여러분에게 자리를 빌려 당부하고 싶다. 정당한 선수의 어필을 묵살하지 말고 선수의 위에 서지 않고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길 당부한다.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여 빛을 보고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비겁한 억지는 강하게 저지하고 불편한 상황은 최대한 해소시켜 아름다운 조연으로 멋진 무대가 완성되도록 힘써 주길.

심판은 그림자 속에서 아름답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빛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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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오심과 오판이 정정된 '정심'

이는 심판의 실수를 인정하여 번복되는 판정을 말한다.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양해 못 할 선수도, 팬도 없다. 세상에는 공통적인 분모, '정도'가 있다.

오심을 했더라도 신속한 정정과 매끄러운 처리가 뒤따른다면 이것은 오심이 아니라 '정심'이 된다.

물론 심판이 경기 전체를 망쳐버릴 정도로 중대한 오심을 연속해서 남발한다면 비판과 징계를 면할 수 없겠지만, 일시적인 심판 판정에 대한 수정은 비판과 징계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올림픽과 같은 중요한 대회에서도 간혹 심판 판정이 번복되곤 하는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공교롭게도 한국 선수 2명에게 심판 판정이 번복된 일이 있었다.

박용성 전 대한체육회장은 "박태환의 오심은 한국 선수단이 재빠른 이의신청과 2차 항소 끝에 올림픽 수영 사상 처음으로 판정 번복을 끌어 냈다"며 "조준호의 경우에는 오심이 아니라 오심 정정이라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늘 그렇듯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오심은 그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오심이라는 화살을 자기 가슴에 쏘지 않으려면 심판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조언을 얻고 선수를 이해하고 당구에 대해 늘 고민하고 공부하고 애써야 한다.

 

필자 류지원

현 대한당구연맹 공인심판
현 대한당구연맹 여자 3쿠션 당구선수
경기지도자 2급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 류지원 공인심판에게 당구 규칙에 대해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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