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서 장호순은 당장 열악한 환경에서도 힘겨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동료 스누커 선수들과 한국 스누커의 성장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빌리어즈=김탁 기자] 국내에서 스누커는 비인기 종목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20년 역사가 짧지는 않지만, 그동안 종목 발전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그러나 스누커는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종목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열악한 환경에도 고군분투하는 스누커 선수들이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한국 당구의 주류로 꽃길을 달리고 있는 캐롬 3쿠션도 과거에는 대중들이 ‘선수’가 있는지도 모르는 종목이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지금의 스누커처럼 관심받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이었던 3쿠션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열악한 환경에도 큐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누커는 그때처럼 열악하다. 선수들은 연습할 훈련장조차 없고 큐 한 자루 지원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0년, 20년 뒤 한국 스누커의 미래를 그리며 희생을 자처하고 있다. 그들은 8, 90년대 3쿠션 선구자들이 걸었던 그 길을 지금 걷고 있다.

지난 11월 말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스누커 종목 우승을 차지한 장호순(울산)은 4년 만에 성적을 냈다. 스누커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그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것은 그간의 시간들이 얼마나 더 고되었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와 나눈 인터뷰에서 힘들지만 같은 길을 계속 걷고 있는 몇 안 되는 동료 스누커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스누커 선수 장호순’과 나눈 이야기를 들어보자.

 

-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어떤 기분이었나.

좋다는 기분보다는 울컥했다.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좋지 않아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분명히 대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만에 성적을 낸 것에 대한 기쁨과 스누커 선수들이 공유하는 여러 감정이 섞이면서 고마움,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스누커 선수들이 공유하는 감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것보다는 “우리가 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알다시피 스누커 선수들은 좋은 환경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훈련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어렵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변변한 연습장이 없기 때문에 어떤 대회에는 스누커 당구대에서 아예 연습을 하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스누커 선수들은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생각이 강하다. 아무래도 선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스누커 발전의 사명감과 같은 것을 함께 공유하는 감정이다.

 

- 2013년에 전국체전 우승으로 상승세 타이밍을 잡았는데,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그동안 선배들에게 단일대회 성적을 내야 한다고 많이 혼나기도 했다. 연습이 충분하지 못해서 큰 대회에서 톱클래스 선수들을 만나면 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호순이는 멘탈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게 되더라.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간절함이 커졌다.

 

- 지난 대한체육회장배에서는 최경림, 이근재 같은 톱클래스 선수를 이겼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력을 보여주자는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임했다. 이기고 싶다는 간절함과 함께 이런 심리적인 상태가 전반적인 경기력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승하겠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개인적으로는 최경림 선수를 꼭 이기고 싶었다.

 

- 최경림 선수와 경기에서 그동안 이긴 적이 없었나.

그동안 최경림 선수에게 여러 번 패하면서 지는 것이 아예 습관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꼭 넘어야 할 산과 같았다. 지는 것이 습관처럼 되면 아예 그 선수와는 시작부터 기가 눌린 채로 경기를 하게 되고, 자신의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 어떤 부분에서 자신을 압도한다고 생각하나. 그럼 이번 승리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모든 부분에서 좋지만, 경력과 멘탈 이런 부분에서 가장 센 선수다. 어려서부터 ‘중국식 소대(작은 당구대)’이기는 하지만 스누커 당구대에서 공을 쳤고, 그때부터 오래도록 쌓인 감각들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 최경림 선수와의 경기에서는 스스로 냉정해지려고 애를 많이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타석에 섰던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장호순은 지난 4년 공백의 원인을 한국에서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보여주기식 화려한 당구를 치려고 한 것을 꼽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최경림, 이대규 등 한국 선수들이 중국의 스누커를 배워 왔다. 본인은 국내에서만 스누커를 쳤나.

한국 선수들이 스누커를 외국에 나가서 배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용과 시간 등 만만치 않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점점 쌓이게 되었다.

한국이 스누커의 불모지이지만, 작은 데에서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꼭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보여주기식의 화려한 당구를 치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 과정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공백이 생겼던 원인이기도 하다.

 

- 스누커와 같은 지원이 미비한 종목 선수 활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스누커 선수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 미술을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어려서부터 배웠던 것들을 어느 한 가지도 끝까지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누커만큼은 끝까지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무리 환경이 어떻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또 어떻고 해도 큐를 놓지 않고 훈련하고 있다.

 

- 스누커 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가족이나 주변의 만류는 없었나.

처음에는 그런 질문을 많이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스누커 종목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그런데 스누커는 정말 매력적인 종목이다. 한국에서 환경이 어렵다고 우리 선수들마저 ‘도전’을 멈춘다면 어떻게 되겠나.

지금도 많은 선수들을 비롯한 스누커 관계자들이 노력하고 있고, 당장 환경이 열악하지만 힘겨운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스누커가 점점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지금도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나와 그리고 우리 스누커 선수들이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내년의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아직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여건은 안 되고, 얼마 전부터 훈련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개인 연습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내년에는 꼭 개인 연습장을 완성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아들에게 항상 힘을 주시는 어머니와 황철호 선배, 박승칠 원장님을 비롯한 모든 스누커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스누커 심판과 운영진 여러분에게도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에서 스누커 종목의 성장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누군가 뒤에서 관심과 응원을 준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된다. 내년에도 한국 스누커가 한걸음 내딛기 위해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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