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당구를 소재로 한 영화 <큐>는 원정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95년 7월에 크랭크인했다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1990년대 중반에도 국민의 당구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당구대회가 TV 방송을 통해 자주 소개되고 당구장의 신설 규제가 풀려 당구장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데다가 ‘18세 미만 당구장 출입 금지’가 헌법소원 결과 해제됨으로써 당구는 더욱 ‘스포츠’에 접근하게 되어 국민의 관심이 점차 높아졌다. 

때마침 미국에서 61년도에 <허슬러>라는 내기당구 영화가 폴 뉴먼 주연, 파이퍼 로리 조연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아 당구 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87년에는 다시 폴 뉴먼이 톰 크루즈와 공동 주연한 내기당구 영화 <컬러 오브 머니>가 다시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 각광을 받았다. 

특히 이 두 편의 영화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반응을 일으켜 일본에 유례없는 포켓 당구 붐을 조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한국 당구용품계에도 호재가 되어 엄청난 양의 포켓 당구대와 초크, 팁 등의 당구용품을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건 조성으로 한국 영화계가 당구영화 제작에 마침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화 <큐>에 출연한 이덕화, 김종헌, 심혜진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영화 <잃어버린 너>를 연출한 바 있는 원정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중견 연기자인 이덕화, 독고영재, 심혜진과 톱 CF모델인 김종헌이 배역을 맡아 <큐>라는 본격 당구 영화를 95년 7월 초에 크랭크인했다. 

영화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당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 <허슬러>와 <컬러 오브 머니>처럼 대박 나는 흥행 성공이 목적이었지만, 당구계로서도 한국 당구계 최초의 본격 당구 영화가 촬영된다는 사실에 고무되지 않을 수 없었다.

<큐> 영화의 국민적 관심과 성공 여부에 따라서는 한국 당구가 붐을 맞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당구선수가 연기자의 경기 장면을 지도하고 어려운 묘기 장면의 대역을 맡기도 했으며, 당구용품 생산업자들은 당구대를 지원하는 등으로 마치 당구계의 대행사를 당구인들이 한마음으로 치르는 것과 같은 열성으로 <큐> 영화의 성공을 위해 협조했다. 

<월간당구>에서도 한국 당구사에 기록될 최초의 당구영화가 제작되는 모든 과정에 관심을 갖고, 최초의 촬영 현장에서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에 이르기까지 밀착 취재해 다루었다.

 

당시 <월간당구> 카메라 앞에 선 원정수 감독, 이덕화, 김석윤 선수, 독고영재, 김종헌(왼쪽부터)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예술구 김석윤이 주연배우 이덕화 당구 지도
클라이맥스 당구대회 신에서는 당구인들 총출동

영화 <큐>는 미국에서 제작되어 선풍적 인기를 끈 <허슬러>와 <컬러 오브 머니> 같은 포켓볼로 내기당구를 하며 전국을 누비는 당구 낭인(허슬러)들의 대결과 복수, 애정을 다룬 멜로드라마다. 

주연을 맡은 이덕화는 당구지점 300점 수준이었고, 독고영재와 김종헌은 150점 수준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현란한 당구 기술이나 예술구를 칠 때는 당구선수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예술구 일인자인 김석윤은 이들이 연기할 때마다 밀착하여 당구 기술을 지도했고, 묘기 장면에서는 대역을 맡았다. 

이덕화는 당시 정치에도 관심이 있어 민자당의 지역구를 맡아 총선에 출마하기로 되어 있어서 어쩌면 연기자로서 당분간의 고별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연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CF모델 출신의 김종헌도 연기자로서 첫 데뷔 작품이었으므로 촬영 현장은 활기가 넘쳤다. 

영화 <큐>의 클라이맥스 장면인 '95 허리우드배 서울오픈국제포켓볼대회'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95년 9월 26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있는 국일당구회관에서는 영화 <큐>의 중요 장면인 민욱(이덕화 분)과 독고(독고영재 분)의 운명을 건 내기당구 신이 촬영 중이었다.

원정수 감독의 "레디, 카메라, 액션"하는 소리와 함께 현장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들은 진땀을 빼며 원 감독의 마음에 흡족하기까지 몇 차례고 되풀이했다.

당구 연기에 문제가 있으면 김석윤이 불려가 다시 지도를 해주었다. 

95년 12월 1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소재한 대광고등학교 실내체육관에는 영화 <큐>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국제대회 경기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허리우드 포켓 당구대 20대가 설치되었다.

출전선수 역으로 현역 선수들 다수가 참가하고 대회 임원과 시상자로서 현역 당구인들이 여러 명 출연했다. 

대회 명칭도 '95 허리우드배 서울오픈국제포켓볼대회', 후원은 (주)한밭과 거산으로 플래카드에 명시되었다.

국제심판진으로 서울선수회 소속 김구식, 박병국과 경기도선수회 김종희 등이 출연했고, 출전선수로는 청엽회(동호인 단체) 회원들과 예술구 김원오, 김기현, 백성미, 그리고 서울선수회 신인선발전에서 선발된 송상수가 독고영재의 상대역을 맡아 출연했다. 

영화 속 포켓볼 대회 시상식 장면에서 시상하는 (주)허리우드 고 홍영선 대표(오른쪽 세번째)와 당구인들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또한, 대회 주최측 임원진으로는 직접 시상을 하는 장면에서 허리우드 홍영선 대표, 임영렬 전 대한당구협회장 외에, 신순상, 이윤석, 조동성, 김문장, 한밭 권오철 대표, 정상가구 정종명 대표 등 당구인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이날의 국제대회 장면은 마치 91년 서울 월드컵의 재판(再版)을 보는 것처럼 엑스트라 동원 없이도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었다. 이날 촬영은 자정을 넘겨 1시 30분까지 진행되었다. 

당구계의 직간접적인 지원과 관심 아래 당구 영화 <큐>는 총제작비 15억원을 들여 다음 해인 96년 설 개봉을 목표로 촬영되었으나, 3개월 가량 늦어진 그해 5월에 개봉되었다. 

그러나 당구인들의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당구영화 <큐>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당구계에도 이렇다 할 호재로 기여하지 못했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당구인들은 당구 종목을 캐롬(4구 또는 3쿠션)이 아닌 포켓볼을 채택함으로써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들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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