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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130년史] (사)대한당구협회 초창기 10년간 운영비를 조달한 ‘대한빌리아드클럽’②
김기제 발행인 | 승인 2017.09.09 13:44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만 10년간 대한빌리아드협회 후원단체로서 당구계 발전에 공헌했던 대한빌리아드클럽이 1976년 11월 23일 해산총회를 가졌다. <사진=빌리어즈 자료사진>

1966년 2월 대한환경위생협회 중앙유기분과위원회 제3대 위원장을 맡은 유정선은 서울 소공동 요지에 3층 상가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서 건물 1층은 다향다방, 2층은 대륙당구장을 운영했다.

그는 전국 다방을 규합한 협회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어서 단체 운영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고, 단체 운동에 대한 열정과 이상도 높았다.

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즉시 보건사회부에 중앙유기분과위원회를 단독 법인으로 등록하는 작업에 착수해 그해 4월에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로 출발시키고 초대 회장에 취임한다. 

유정선 회장은 협회의 위상의 상징으로 단체 휘장과 기(旗)를 제정하는 한편, 무엇보다 중요한 단체 운영의 경제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숙고한 끝에 협회 임원들 외에 당구 관련 생산∙판매자들까지 참여하는 당구클럽을 운영하는 방안을 세웠다.

이 방안을 발표하자 회장과 임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면서 협회를 운영하던 방식에 한계를 느껴오던 협회 임원을 비롯한 유지들이 즉시 이에 동의함으로써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출자자들을 모집했다.

'대한빌리아드클럽'으로 명명한 협회 산하의 도장 성격의 이 당구장은, 클럽 회원 1구좌당 일금 3만원을 받았고 최초 회원 수 32명에서 시작해 곧 47명으로 증원되었다.

참고로 출자 회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둔다. 

권영국 권영선 김성영 김신호 김유경 김창성 김홍석 노원태 박범홍 박군실 박수복 박순락 박성오 배원기 신영식 안우승 안동형 양창종 유기한 유정훈 유승수 이교일 이수명 이완호 이회제 이상헌 이영춘 이우종 이좌익 이종섭 이용익 이정환 이한구 이호창 이헌영 이흥남 임석환 조갑증 조광수 조봉호 전화영 정종대 최승민 최창환 탁광열 한명식 함수홍(가나다순)

이들 회원 중 협회 관계자가 아닌 사람으로는 용품생산업의 박군실(빅토리큐 대표), 배원기(일진석판 대표), 신영식(신영답브 대표), 이용익(아카데미초크 대표)과 재료상으로 최창환(인천당구재료 대표), 당구대 조립기사인 이수명 등이 눈에 띈다.

장소를 물색한 끝에 당구 도장(클럽)을 겸한 협회 사무실을 현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 162번지 건물로 이전했다.

초창기 클럽 이사장은 협회장이 겸임했고, 세 사람의 부이사장과 두 사람의 감사, 그리고 상무는 협회 상무(전화영)가 도장 운영까지 맡아서 겸임했다. 

클럽 설립 목적이 협회의 재정 지원에 있었으므로 클럽 운영 수익금의 태반은 협회의 지원금으로 충당했다.

그리고 회원들에게는 별도 배당금은 지급하지 않는 대신에 월례회마다 푸짐하게 회식하고 잉여금은 적립했다.

매년 춘추로 1회씩 회원 부부 동반에 원로들을 초청해 전국 명승지를 두루 관광하기도 했다.

당시 당구인들에게는 대한빌리아드클럽 회원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한빌리아드클럽 회원들은 춘추로 연 2회 부부동반으로 전국 명승지를 관광했다. 사진은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 앞.&#160; <사진=빌리어즈 자료사진>

유정선 회장, 연탄가스 중독으로 갑작스럽게 사망
대한빌리어드협회와 클럽도 화재로 잿더미 돼

클럽 운영은 당구장 운영 경험이 풍부하고 책임감이 있는 회원들이 매일 2명씩 조를 이루어 당직 근무를 하는 한편, 사범을 두어 고객들의 기술지도까지 해 클럽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정식 사범은 지점 1000점의 최고 경기인들인 노기호(1924년생, 제2, 3, 4회 한일친선당구대회 심판장), 박수복(1961년생, 해방 전 만주에서 활동, 당구협회 부회장, 제1회 전국기술구대회 1위, 제3회 전국당구대회 1위), 권수동(1907년생, 당구협회 선수부장, 제2, 3회 한일친선당구대회 단장), 조성철(1924년생, 제5회 전국당구대회 1위) 등이었다. 

그런데 초대에 이어 제2대 회장을 맡아 클럽 이사장을 겸하고 있던 유정선 회장이 1968년 9월 7일 취침 중 연탄가스 중독으로 부인과 함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유정선 회장을 잃은 당구계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의 2년 7개월 동안 회장으로서 이룬 업적을 돌이켜 볼 때 그의 급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한빌리아드클럽의 제2대 이사장은 건축회사 사장 출신인 한명식이 추대되어 1976년 협회 해산 때까지 리더십을 발휘해 회원들 간의 인화를 도모하며 클럽을 발전시켜 나갔다. 

1975년 1월 20일에는 세종로에서 공평동 81-1번지로 종전보다는 훨씬 좋은 건물로 협회 사무실과 클럽을 이전함으로써 모처럼 법인단체의 체모에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었다.

사무실은 2층에, 클럽은 3층에 두고 당구대 12대를 설치했는데 당시로써는 비교적 큰 규모였다. 

그런데 그해 11월 협회 사무실 앞 건물에 발생한 화재가 거센 북풍을 타고 건너와 협회 사무실과 클럽을 덮쳐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협회 관계자들의 충격과 낙담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협회 임원들은 재건에 힘을 쏟았다.

다행히 이듬해 5월에 협회 사무실은 종로5가에 마련했으나, 대한빌리아드클럽의 장소는 마련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서울 시내 사대문 안의 제반 업체들은 정부 당국의 신규허가 억제로 인한 TO제로 묶여 있어서 끝내 마땅한 곳을 물색하지 못했다.

결국, 대한빌리아드클럽은 해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1966년 7월에 창립해 1976년 11월 23일까지 만 10여 년 동안 대한빌리아드협회의 후원단체로서 협회는 물론 한국 당구 발전에 크게 공헌했던 대한빌리아드클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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