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빌리어즈>와 화보 촬영한 김행직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빌리어즈=김탁 기자] 12년마다 한국에 당구 천재가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다.

이것은 황득희(68년생,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 고 김경률(80년생, 월드컵 챔피언) - 김행직(92년생, 월드컵 챔피언)으로 이어지는 한국 당구의 계보를 말한다.

한국 당구의 굵직한 획을 그었던 3명의 선수가 공교롭게도 12살 차이, 띠동갑이기 때문에 이런 속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계보는 김행직이 지난 7월 열린 '2017 포르토 3쿠션 월드컵'에서 챔피언에 오르면서 마침내 완성되었다. 

최다 주니어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김행직은 시니어 무대에서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 등 두 차례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패해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10일 열린 포르토 월드컵 결승전에서 베트남의 응웬꾸억응웬을 누르고 첫 번째 월드컵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유소년 시절을 전부 당구대 위에서 보내며 10년 넘게 훈련에만 매진해 온 ‘당구 천재’ 김행직. 

한국의 새로운 월드컵 챔피언, 한국 당구의 계보를 잇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 황득희에서 김경률, 김행직으로 이어지는 한국 당구 계보가 얼마 전 김행직 선수의 월드컵 우승으로 완성되었는데, 기분이 어떤가?

기쁘고 한편으로는 얼떨떨하다. 분명히 우승컵을 들고 돌아왔는데 우승을 했나,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것도 지나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치러야 할 수많은 시합 중의 하나가 지나갔을 뿐, 우승했다는 기분에 도취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다.

- 월드컵 챔피언이 된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경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이미 두 번의 결승전 경험이 있다.

2015년 룩소르 월드컵과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패했던 경험이 포르토에서 월드컵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 각각의 패배와 승리를 비교하면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

보통 '경기 운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른바 '수 싸움'에서 승부가 갈리게 된다. 야스퍼스한테 월드컵 결승전에서 졌을 때는 8이닝에 경기가 끝났다. 

야스퍼스의 득점력이 폭발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산체스에게 졌을 때는 내가 기회를 몇 번 놓쳐서 패배를 당했다. 

내가 득점을 못 했을 때 상대방에게 득점 확률이 낮은 포지션을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기회를 주었다. 둘 다 경기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포르토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수구 컨트롤에 집중했다. 내가 못 쳤을 때 상대방에게 확실한 기회가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이 앞서가던 경기는 승리하고, 지고 있던 경기는 뒤집을 수 있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포르토 월드컵 우승컵을 든 김행직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 산체스나 야스퍼스 같은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이 '경기 운영' 부분에서 아직 차이가 나는가?

맞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세계대회를 치르면서 몸으로 익힌 경기 운영이 필요한 순간마다 빛을 발한다. 

관록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플레이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우리도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그들만큼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주니어 세계 챔피언, 아시아 챔피언,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월드컵 챔피언 등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김행직 선수가 갖고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나는 어려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당구 훈련을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누구보다도 많은 연습을 했다. 

보통 어려서 배운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훈련하면서 체득한 것들이 지금 가장 큰 무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어느덧 20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10대나 20대 초반이랑 비교했을 때 지금 플레이에 달라진 점이 있나?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정말 무서운 게 뭔지 모르고, 아예 공격만 했다.

가끔 과거에 경기했던 영상을 보면 '내가 저렇게 과감하게 공격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구대 코너에 딱 태워야 하는 공이 있으면, 예전에는 그것을 과감하게 태워서 성공시켰다. 

지금 같았으면 안정적으로 확률 높은 수비를 선택했을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는 내가 봐도 무모하다 싶을 만큼 과감한 공격 일변도의 플레이를 많이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타일이 저절로 바뀌었다.

안 맞았을 때 확률상 상대방에게 기회를 덜 주고 나에게 다시 기회가 넘어올 수 있도록 하는 안정적인 플레이에 더 신경 쓰게 되더라. 

공격형과 공수조화형 두 가지 스타일 중에서 공수조화형이 더 이길 확률이 높다. 

김행직은 지난해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사진 = Kozoom Korea>

- 월드컵 우승 이후 시간이 지났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훈련하고 있나?

나는 이번 월드컵 우승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두 번이나 세계대회 결승에서 패하면서 자칫 징크스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새로운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세계 톱 클래스 선수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계속 경쟁을 이어가려면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두께를 맞히고 원하는 회전을 원하는 힘으로 치는 것과 수구를 제대로 컨트롤하는 기본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것이 기술을 구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나는 아직도 두께를 정확하게 맞히는 것이 어렵더라.

- 김행직 선수를 보고 꿈을 키우는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달라.

어린 시절 많은 연습과 경험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훈련은 없다. 당구는 장기간 묵묵한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고 싶고,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 등을 모두 참으면서 도전할 수 있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기 바란다.

-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 바라는 점 등은 무엇인가?

월드컵 한 번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또 자만하지 않으면서 더 열심히 훈련할 것이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다.

앞으로 내가 치러야 할 많은 경기에서 더 많이 승리하고 당구 팬 여러분들에게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3쿠션 환경이 빨리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3쿠션도 지금보다 상금도 더 커지고 더 나은 경기 환경기 만들어져서 스누커 프로들처럼 3쿠션 선수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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