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들이 개인 기량에 멘탈 훈련까지 더해지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활약을 펼칠 것이다

“당구는 멘탈 스포츠다” 이 한 문장이 말해주듯 당구에 있어서 멘탈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두 번 설명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당구선수를 위한 심리기술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천, 김경률, 조재호, 최성원, 강동궁, 허정한, 김행직 등 세계 무대에서 큰 활약을 벌여온 선수가 그 어느 나라보다 많지만, 정작 멘탈 스포츠임에도 멘탈에 대한 훈련은 전무하다.

특히 당구연맹의 가장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캐롬을 제외하면 포켓볼이나 스누커 등의 다른 당구 종목에서는 김가영, 차유람 등 소수의 선수 외에는 세계무대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좋은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 불리던 정영화도 있었고, 빈약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 당당히 입상하는 포켓볼 주니어 선수와 스누커 주니어 선수들도 있다.

이들에게 기술 지원과 더불어 심리 훈련까지 더해진다면, 한국은 캐롬을 넘어 포켓볼과 스누커에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심리기술훈련과 당구 수행과의 관계성’에 대한 논문을 쓴 옵티머스에이전시의 박지수 대표는 멘탈 훈련이 당구선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직접 옵티머스에이전시에 ‘멘탈트레이닝센터’를 세우고 대한축구협회에서 축구선수들의 심리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중앙대학교의 강성구 교수를 초빙해 후원 선수들의 멘탈 훈련을 시작했다.

과연 멘탈 훈련이 당구선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강성구 교수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포츠심리전문가 강성구 교수 <사진 = 빌리어즈>

- 우선 교수님의 경력이 궁금하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 지는 26년쯤 됐고, 스포츠 심리학을 연구한 지는 20년쯤 됐다. 주로 대한체육회에서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심리상담을 많이 했다. 여자 대표팀, 남자 대표팀 전부 10년 정도 된 거 같다.
 

- 스포츠 선수에게 심리전은 시합에서 얼마의 비중을 차지하나?

심리적인 기술이 필요한 스포츠 종목이 많이 있다. 양궁이나 사격, 당구 같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종목은 물론이고 피겨스케이팅 같은 종목도 멘탈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상대 선수와 번갈아 시합을 하는 종목이 심리훈련이 꼭 필요하다. 상대 선수의 성적이 자신의 경기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런 종목은 선수의 멘탈이 반 이상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때로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두 선수가 동일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심리적인 부분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다.
 

- 만약 실력적인 면에서 약간 뒤진다 할지라도 멘탈이 강하면 실력이 자신보다 살짝 우위에 있는 선수에게 이길 확률이 높아질까?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실력 차이가 확연히 많이 나는 선수라면 심리적인 변수가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컨디션에 따라 경기가 좌우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심리적 전략들이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당구에서도 한두 점 차이 나는 실력이라면 멘탈이 경기의 결과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유명 선수들 중에서도 멘탈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되는데, 이럴 때를 위해 멘탈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인가?

흔히 두부 멘탈, 유리 멘탈, 최근에는 쿠크다스 멘탈이라고 부를 정도로 작은 충격에도 심리적인 타격을 받는 선수들이 있다.

불안이 높아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근육의 긴장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손을 떤다든지, 눈의 초점이 흔들린다든지, 과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집중을 못한다든지, 게다가 상대 선수의 압박이 더해지면 그 증상들은 더 심해진다.

그러면 아주 쉬운 공도 못 치게 된다.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선천적으로 경쟁을 두려워하는 성격과 실패의 상황을 많이 경험하면서 생기는 후천적인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특성 불안이라고 하는데 훈련으로 극복하기가 후자보다 어렵다. 후천적인 경우는 충분히 심리적인 전략과 연습, 트레이닝 면담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극복한 사례들이 무궁무진하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심리기술 훈련을 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기술이 중요한 종목 외에도 축구나 럭비같이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종목도 심리기술 훈련을 하는 이유가 연습용 선수라도 심리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연습용 선수는 어떤 선수를 말하는 건가?

연습할 때는 굉장히 잘하는데 실전에서는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를 연습용 선수라고 하는데, 실전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거나 자신이 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중압감, TV 중계로 인해 미디어가 나를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실제 경기에서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 
 

- 축구나 럭비 같은 종목은 어떤 심리 훈련을 하나?

시합 나가기 전 컨디션이 나쁠 때는 어떤 심리적인 전략을 펴야 하는지, 대표로 안 뽑힌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경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 대회 전에 필수적으로 교육을 받게 되어 있다.

축구는 승부차기 때 선수들이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멘탈 관리가 꼭 필요하다. 


- 당구선수에게도 필요한 훈련인 거 같은데. 

그렇다. 당구가 멘탈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당구에서는 심리 기술의 중요성을 아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얼마 전 옵티머스에이전시에서 후원 선수들을 상대로 스포츠 멘탈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당구선수에게 심리적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하게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심리라는 것이 경기력에 얼마큼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심리 기술의 필요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시도가 좀 더 자주 있어야 된다. 지금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잘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기량에 멘탈 훈련까지 더해진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4대천왕들처럼 오랫동안 상위 랭커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 개인이 원한다고 시작할 수 있나?

물론 개인적으로 스포츠 심리상담사를 수소문해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종목들이 협회 차원에서 이런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축구도 협회에서 큰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심리 기술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 만약 아시안게임에 앞서 이런 심리 기술 훈련을 했더라면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 수도 있었겠다. 대회 전 선수촌에서 코치나 감독 중에 심리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들이 직접 멘탈 훈련을 했다고 했는데, 그 방법도 효과가 있었을까?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선배로서의 조언 정도였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은 꼭 전문가에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심리적으로 풀 문제인지, 신체적 문제인지, 혹은 정신적인 문제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의사에게 보낼 사람은 보내고, 심리 훈련이 필요한 사람은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올림픽에서 화제가 된 펜싱의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라는 혼잣말도 보편적인 심리 기술이다.

“할 수 있다”는 혼잣말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인데, 즉흥적인 말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심리 기술인 ‘혼잣말 훈련’이다.

반복된 심리 기술 훈련이 실전에서 빛을 본 케이스다. 당구 역시 심리 훈련을 보완하면 좋은 선수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집중력과 스포츠 심리가 관계가 있을까? 멘탈 트레이닝을 통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나?

집중력 훈련은 심리 기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훈련이다. 방법도 여러 가지다. 스포츠 심리에서 가장 크게 다루는 두 영역이 바로 불안과 주의 집중이다.

불안은 말 그대로 경쟁에 대한 불안, 그리고 얼마큼 몰입해서 자신의 실력을 효과적으로 발현할 수 있느냐, 이게 바로 '주의 집중'이다.

주의 집중 훈련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요즘 미국에서는 주의 집중 훈련 방법으로 라디오 받아쓰기를 한다.

처음에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받아쓰도록 시킨다. 그러다 조금씩 익숙해지면 옆에 라디오 하나를 더 켜고 계속 받아쓰기를 시킨다.

나중에는 받아쓰는 라디오의 볼륨은 낮추고, 다른 라디오 볼륨은 높인 채 그 훈련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양궁선수들이 집중력 훈련을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 경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집중력을 높일 수 있을까?

핸드폰이나 인터넷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핸드폰이나 인터넷 사용을 많이 한 선수들의 뇌를 사진으로 찍으면 뇌에 산소가 현저히 적다.

전두엽의 실행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에 쉬운 길도 못 찾게 된다. 시합 전날 밤부터 되도록 핸드폰과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게다가 눈에 피로가 쌓이기 때문에 시합 전날 밤에 두 세 시간씩 컴퓨터나 모바일로 게임이나 카톡, 인터넷 검색 등을 하면 분명히 경기 능력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 당구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멘탈 트레이닝은 무엇일까?

보통 불안이나 집중력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먼저 멘탈 리허설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적인 실력이 세계 수준만큼 올라가지 않으면 심리 훈련까지 동반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당구 훈련에 집중해서 실력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관리, 정서관리가 먼저 필요하다.

시합을 대하는 태도나 평소 연습에 대한 태도, 생활 전반을 대하는 태도 등 이런 것들도 다 심리 훈련이다.

이걸 어려운 말로 '멘탈 리허설, 정신 연습'이라고 하는데, 시합 나가기 전에 어떤 심리로 시합을 나가야 하는지 연습하는 것이다.

평소 당구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하는 것부터 시합에 앞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시합에서는 어떤 태도와 매너를 보여야 하는지까지 멘탈 리허설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불안 조절, 집중력 훈련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물론 자신이 세계 톱 랭커 중 하나라면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야겠지만 말이다. 
 

- 캐롬, 포켓볼, 스누커 등 당구 모든 종목의 선수들에게 이 훈련이 꼭 필요할 것 같다. 당구는 타 스포츠와 다른 점 중의 하나가 상금 규모인데, 이런 시합 외적인 요소도 선수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칠까?

물론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내적 욕구와 외적 욕구가 잘 매치가 되어야 하는데, 당구가 좋아서 치고 싶은 내적 욕구는 강한데, 당구를 통해서 얻고 싶은 돈이나 명예, 유명세 등 외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당구선수로서의 의욕이 떨어지게 된다.

너무 내적 욕구만 강요하고 물질적 보상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괴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상금을 얻으려는 동기부여와 충분한 보상이 주어져야 선수들도 안정된 상황에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이 생활을 위해 당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 당구를 멘탈 스포츠라고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멘탈 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단시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나? 

트레이닝이라는 것은 반복적인 훈련이다. 장시간 훈련을 해서 오랜 습관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멘탈 트레이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꾸준한 훈련을 통해 분명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선수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멘탈 트레이닝을 통해 더 좋은 성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