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 축구는 경기마다 불과 한두 골로 승리를 거두기 때문에 축구 경기를 보는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매번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이런 이탈리아를 이겨야 하는 상대 팀까지 빗장 수비보다 더한 일명 ‘침대 축구’를 구사하게 되면 경기는 더욱 재미가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경기는 승리를 위한 격전장이 아닌 승리를 향한 탐욕의 무대로 전락하게 되어 스포츠로서의 의미조차 퇴색되기 마련이다.

이런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TV를 통해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도 외면을 받게 된다. 이처럼 지나친 수비 플레이는 스포츠의 본질까지도 위협하는 마이너스적인 요소다. 

당구는 수비 플레이에 비교적 관대한 스포츠다. 노골적인 수비 플레이를 보고 오히려 “디펜스를 기가 막히게 했다”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캐롬의 경우 수구를 레일에 붙여 놓거나 제1적구를 수구와 멀게 배치시켜 상대방의 다음 공격에서 실수를 유발하고, 포켓볼이나 스누커 경기에서는 상대방이 다음 공을 치지 못하도록 수구를 다른 공 뒤로 숨기는 수비 플레이로 경기의 주도권 싸움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비 플레이는 관중들이 경기를 관람할 때 박진감을 떨어지게 만들지만, 관중들이 선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를 보는 눈’을 갖고 있다면 정교한 샷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포켓볼이나 스누커에서의 수비 플레이는 누가 봐도 어떤 의도로 수비 플레이를 한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눈이 부족한 대다수의 일반 관중들까지도 지루해하지 않고 전략적인 부분으로 이해하며 경기 관람을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스누커는 아예 수비 플레이를 해놓고 상대방이 그 수비를 풀어낼 때까지 수비를 해 놓은 선수가 득점을 올리게 되기 때문에 룰 자체에서 아예 수비를 공격으로 만들어 놓았다.
 
자칫 계속된 수비로 인해 관중들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이너스적인 요소를 ‘수비 = 공격’이라는 룰로 만들어 놓아 관중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게 한 것이다.
 
반면에 3쿠션에서 나오는 수비 플레이를 이해하려면 경기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3쿠션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이런 수비 플레이를 전략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3쿠션 경기에서 이런 수비 플레이가 노골적으로 계속된다면 득점이 많이 나지 않게 되고 경기 시간만 길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중들은 흥미를 쉽게 잃기 마련이다.
 
특히 3쿠션과 같이 정적인 종목은 스포츠의 박진감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경기마저 이렇게 지루하게 진행된다면 많은 사람이 흥미를 갖는 종목으로 발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일반 관중들의 호응도가 떨어지고 마니아들에게만 사랑받는 종목은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에서 관중의 많고 적음은 스폰서 영입 문제와 관계가 깊다.
 
대부분의 스폰서들은 투자 이상의 효과를 기대한다. 많은 관중과 채널로 얼마나 자주 노출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점으로 삼기 때문에 이런 노출 측정도에 따라 스폰서 영입 유무나 스폰 규모 등이 결정된다.
 
결국, 관중이 외면하는 종목은 상대적으로 발전은커녕 설 자리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에서는 종목의 운명을 쥐게 되는 이러한 중대한 문제 때문에 경기 룰까지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보다 많은 관중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경기 방식을 바꾸면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골프다. 
 
과거 골프는 당구처럼 1 대 1 방식의 개인 종목이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노골적으로 이기기 위한 수비 플레이를 하게 되면서 골프의 재미가 크게 떨어졌고, 결국 룰을 완전히 바꿨다.
 
전통적인 경기 방식을 탈피하게 된 골프는 ‘얼마나 적은 타수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나’를 승패의 기준으로 삼았다. 선수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공을 상대방들보다 적은 타수로 홀컵에 집어넣어야 하는 공격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순하게 ‘누가 빨리 홀컵에 수구를 집어넣을 수 있느냐’의 방식으로 룰을 바꾼 골프는 당구처럼 정적인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관중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현재 규모의 골프로 성장하게 되었다. 
 
골프의 성공 원인에 대해 연구한 3쿠션 마니아 김태석 씨는 지난해 ‘레이아웃 3쿠션’이라는 공격 플레이 중심의 새로운 3쿠션 경기 방식을 창안했다.
 
레이아웃 3쿠션의 가장 큰 특징은 선수가 매 이닝 첫 번째 샷에서 상대방이 넘겨준 공 배열을 레이아웃 샷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이닝에서 칠 공 배열을 한 번의 기회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상대방의 수비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선수는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가 하는 공격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이아웃 3쿠션은 지난 6월 열린 잔카세이프티배와 인천시당구연맹 월례대회에서 시범 경기를 개최했다.
 
그동안 많은 당구팬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레이아웃 3쿠션이 당구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만큼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의 평가는 좋았다.
 
3쿠션의 경기 방식이 완전히 바뀌고 처음 도입되는 룰이다 보니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전체적인 경기의 방식은 새로운 3쿠션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레이아웃 3쿠션의 육성을 통해 한국이 3쿠션의 중심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시너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포켓볼은 미국, 스누커는 영국, 3쿠션은 한국'이라는 체제로 세계 당구 지형의 변화를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레이아웃 3쿠션 대회를 시도하고 개최하는 것은 3쿠션 종목에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구와 3쿠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 올리기 위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구가 더욱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큐를 잡고 당구 경기를 관람하게 되어 더 많은 스폰서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종목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레이아웃 3쿠션과 같은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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