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정부 "대가성 없이 줬다"…해외 사법당국, 비자금스캔들 수사 확대

7천억 원대의 뭉칫돈을, 그것도 한 나라의 총리와 다른 국가가 아무런 대가 없이 주고받을 수 있을까.

2013년 총선을 앞두고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계좌에 입금된 6억8천100만 달러(현재 환율로 7천818억 원)이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순수한 기부금이라고 양국 정부가 밝혔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델 알 주베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정상회의에서 나집 총리가 받은 거액과 관련,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준 진짜 기부금"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국영투자기업 1MDB와 관련된 중동 국부펀드의 스위스 은행 계좌 등을 통해 나집 총리 계좌에 들어온 돈이 사우디 왕가의 기부금으로 법적 문제가 없다는 지난 1월 말레이시아 검찰의 발표를 사우디 정부가 뒷받침한 것이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사진 = AFP/연합뉴스>

그러자 살레 사이드 케루악 통신멀티미디어부 장관을 비롯한 말레이시아 정부 각료들은 16일 "진실이 드러났다"며 나집 총리의 부패 의혹을 제기해 온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와 서방 언론에 사과를 요구했다고 현지 베르나마통신이 전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나집 총리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말레이시아 정부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으로 누가, 왜 거액을 나집 총리에게 기부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사우디 외무장관의 발언을 수긍할 수 없다며 기부금이라는 증거 서류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영국 BBC방송은 사우디 왕가가 2013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집권당의 승리를 돕기 위해 나집 총리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건넨 것이라고 지난 1월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가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무슬림형제단의 영향을 받는 말레이시아 야당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2015년 8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나집 총리 퇴진요구 집회. <사진 =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사우디 정부가 나집 총리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거들고 나섰지만 나집 총리의 비자금 창구로 의심받는 1MDB에 대해 해외 사법당국은 칼날을 세우고 있다.

1MDB는 나집 총리가 국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개발 사업을 벌이려고 2009년 만들어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 홍콩, 룩셈부르크 사법당국이 자국 내 금융기관과 관련된 1MDB의 자금세탁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다. 스위스 검찰은 1MDB 운영펀드에서 약 40억 달러(4조5천920억 원)가 유용된 정황을 포착한 데 이어 사기성 채권 거래 혐의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집 총리 부부가 1MDB를 통해 조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비자금으로 의류, 보석 등 1천500만 달러(172억 원)어치의 사치품을 샀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해외 사법당국의 수사 결과 1MDB의 부정·부패에 나집 총리가 연루된 혐의가 드러나면 말레이시아 정가에 미치는 후폭풍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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