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잡지는 1987년 2월에 창간된 잡지입니다. 창간 준비 과정이 1년 전부터 진행됐다고 하니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당구와 인연을 맺은 셈입니다. 당시에 당구장이 유기업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생활체육은커녕 그저 하나의 오락이었고, 당구장은 도박과 폭력이 만행하는 유해한 장소로 인식되어 미성년자의 출입조차 금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종목을 주제로 월간지를 만들겠다고 하니 스포츠화를 갈망하는 당구 경기인들은 반가워했지만, 당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공무원들이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문체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지금은 잡지가 신고제이지만, 군부 독재시절이었던 당시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발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구 따위에 무슨 잡지가 필요하냐고 생각했나 봅니다.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유기종목을 스포츠화시키기 위해 앞장 서보겠다는데도, 당구라는 종목의 인식이 고상한 분들에게는 용인될 수준이 아니었는지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만 잡지를 발행할 수 있었던 그때 우리를 도와준 분이 있습니다. 당시 경남 창원시 국회의원이었던 김종하 의원이었습니다.

힘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국회의원 몇 마디에 쉽게 열리더군요. 아무튼, 당구 잡지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0년 정도가 지났을 즈음에, 대회장에서 만났던 한 당구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가판대를 보았는데 거기‘<월간 당구>’라고 쓰여 있는 잡지를 보고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우리 당구선수를 세상에 알리고, 우리 당구선수가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겨서 너무 기뻤다고 하시더군요. 그 당구인은 바로 얼마 전 작고하신 양귀문 원로입니다.

이번 호가 323호째 발간된 잡지입니다. 우리 회사는 <월간 자동차>, <월간 주유소>, <월간 에어로빅&피트니스> 등을 발행하면서 <월간 당구>도 함께 발행했지만, 지금은 <월간 당구>만 발행하고 있습니다. <월간 당구>는 세월의 모진 풍파를 다 견뎌내고 27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간의 기록이 323권의 잡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당구가 유기에서 스포츠가 되는 전 과정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당구가 제대로 숨쉬기 시작한 이래의 모든 역사가 <월간 당구> 323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수십, 수백억 원의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자부합니다. 아쉬운 점은 이 소중한 기록을 같이 기억하고 함께했던 이들이 하나둘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양귀문 원로님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자제분인 양주현 씨와 대한당구협회 김동현 신임 회장과 함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왔습니다. 당구를 너무 사랑해왔던 고인의 뜻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던 양주현 씨는 아쉬워했습니다. 한때 아버지를 도와 획기적인 당구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무척 커 보였습니다.

당구인 2세로 당구를 사랑한 아버지를 두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언제고 다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우리 당구인 2세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세대에서 당구를 바로 잡았다면, 지금 이 세대에서 당구는 일어나야 합니다.

지난 323권의 기록을 당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과 당구선수를 꿈꾸는 꿈나무들이 쉽게 보고 당구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모든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 많은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시키다 보니 용량이 엄청납니다. 시일도 꽤 오래 걸렸습니다. 이제 조금 더 힘을 내면 당구의 참모습을 알 수 있는 사이트가 완성됩니다.

프로 당구가 가시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당구 역사를 짚어보고 옛것을 거울삼아 한 단계 앞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처음 당구계에 발을 딛은 국민생활체육전국당구연합회 김용태 회장이나, 수년 동안 대한당구연맹을 이끌고 있는 장영철 회장이나, 지금 당구계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많은 인사들, 선수들, 학생들 모든 당구인들이 당구를, 당구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보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국한하지 않고 새롭게 이뤄가는 당구의 모든 역사를 남길 것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알면서 새것도 알 수 있습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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