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오' 설리번

출생 : 1975년 12월 5일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드 Wordsley
소속 : 잉글랜드
별명 : 로켓, 에식스의 폭탄
데뷔 : 1992년
최고 랭킹 : 세계 1위
현재 랭킹 : 세계 27위
우승 상금 : 7,708,345파운드
최고 브레이크  : 147(12회)
센추리 브레이크 : 747회

<토너먼트 우승>
랭킹 토너먼트 : 26회(준우승 12회)
마이너-랭킹 토너먼트 : 3회(준우승 3회)
비랭킹 토너먼트 : 25회(준우승 11회)
월드 챔피언 : 2001, 2004, 2008, 2012, 2013년

로널드 안토니오, ‘로니’ 오’설리번은 1975년 잉글랜드의 치그웰에서 태어난 영국 최고의 스누커 선수다.

그는 빠른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며 데뷔와 동시에‘로켓’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2001년, 2004년, 2008년, 2012년, 그리고 작년인 2013년까지 다섯 번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월드 스누커 챔피언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스누커 재능은 일찍부터 드러났다. 열살 때 첫 센추리 브레이크를 작성한 그는 열 다섯 살에 첫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한다.

이후 1992년 열 여섯의 나이로 프로페셔널 선수로 데뷔한 그는 그 다음 해인 1993년 열 일곱 살 때 UK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프로페셔널 랭킹 토너먼트 최연소 우승자로 이름을 올리며 여전히 깨지지 않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19세에 마스터스 대회에서 첫 타이틀을 따낸 그는 역시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역대 최연소 선수로 기록되었다.

로니 오’설리번은 한 번 따내기도 어려운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알려진 월드 챔피언십과 마스터스, UK 챔피언십에서 각각 다섯 번, 다섯 번, 네 번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며 현시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26세에 세계 랭킹 3위에 올랐으며, 그동안 7백50만 파운드 이상의 우승 상금을 벌어들여 스티브 헨드리의 뒤를 이어 역대 상금 랭킹 2위에 올랐다. 

그는 2002/2003 시즌과 2009/2010 시즌 사이 다섯 시즌 동안 세계 1위에 랭크되었으며, 그외의 다른 업적들로는 10개의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과 2002년 영국 내셔널컵 우승이 있다.

또한 수많은 브레이크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오’설리번은 총 747을 기록하며 스티븐 헨드리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그는 12개의 프로페셔널 대회에서 승인된 맥시멈 브레이크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7년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5분 20초 만에 가장 빠른 맥시멈 브레이크 기록을 세웠다.


Talent_재능

오’설리번은 어린 나이부터 그의 재능을 드러내며 업적을 쌓기 시작했다. 열살 때, 그는 그의 첫 센추리 브레이크(117)를 기록했으며, 열두 살 때는 처음으로 토탈 클리런스(테이블 위의 모든 목적구를 포팅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13세에 브리티시 16세 이하 챔피언에 등극했으며, 열네 살 때 템스 스누커 클래식에 출전해 스티브 데이비스와의 경기 실황중계로 텔레비전 방송에 데뷔했다.

그는 1991년 열다섯 살 때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 참가해 첫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했으며, 같은 해 IBSF 월드 21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주니어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그는 1992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프로페셔널 선수로 데뷔했다.


His Records_기록

로니 오’설리번은 그의 첫 프로페셔널 매치인 자신의 76번째 대회에서 74번째 승리를 거두며 1992/1993 시즌을 시작하였다.

이 경기에서의 승리로 그는 38연승을 달성했고,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또한 그는 그랑프리 예선전에서 제이슨 커티스를 5-0으로 43분 36초 만에 이기며, 9선승 경기 중 가장 빠른 기록을 작성했다. 이 경기 이후, 그는 ‘로켓’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2년 9월, 그의 나이 열여섯에 그는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1993년 4월 18일, 17세에 크루시블에 데뷔한 그는 루카 브르쉘과 스티븐 헨드리의 뒤를 이곳에서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세 번째 최연소 선수가 되었고, 아직까지 그의 뒤를 잇는 최연소 선수는 없다.

오’설리번은 1993년 그해의 WPBSA 영플레이어로 지명되었다.

1993/1994 시즌 오’설리번은 UK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스티븐 헨드리를 10-6으로 이기며 그의 첫 랭킹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이로써 그는 열일곱 살에 프로페셔널 랭킹 토너먼트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으며, 그 시즌 브리티시 오픈에서 제임스 와타나를 9-4로 꺾고 그의 두 번째 랭킹 타이틀을 따낸 한편, 그의 첫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두 번째 라운드에 올랐으나 존 패럿에게 3-13으로 패하고 말았다.

세계 랭킹 57위로 시즌을 시작해 무려 48계단이나 뛰어오르며 세계 랭킹 9위로 시즌을 마무리한 그는, 1994년 WPBSA의 플레이어로 지명되었다.

1994/1995 시즌 동안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오’설리번은 꾸준한 경기력을 보이며 그랑프리와 UK 챔피언십, 웨일스 오픈의 준준결승에 올랐고, 두바이 클래식과 유러피안 오픈의 준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태국 오픈과 브리티시 오픈에서는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결승전에서 존 히긴스를 9-3으로 꺾은 그는 19세에 첫 마스터스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십의 준준결승까지 오른 그는 헨드리에게 8-13으로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세 번째 시즌이 끝날 무렵 로니 오’설리번은 프로 스누커 선수로서 헨드리와 데이비스의 뒤를 이어 랭킹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 해 그는 월드 챔피언십 준결승에 올랐으나 피터 엡돈에게 14-16으로 저지 당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대회 동안 스누커 이사회는 오’설리번이 미디어 관계자인 마이크 건레이를 폭행한 것에 대해 2년간 대회 출전 금지, 벌금 20,000파운드를 선고했으며, 그에게 10,000파운드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명령했다.
 
1996/1997 시즌 동안 그는 아시아 클래식과 독일 오픈 두 랭킹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1997년 2월에는 연속으로 세 번째 마스터스 결승전에 올라 데이비스와 대결을 펼쳤다.

이 경기에서 오’설리번은 첫 두 프레임에서 연속으로 116, 113으로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했으나 세 번째 프레임 중 스누커 최초의 스트리커인 리앤 크로프츠에 의해 경기가 중단되었다.

데이비스는 리앤 크로프츠의 스트리킹(옷을 벗고 경기장을 달린) 사건으로 인해 한창 탄력받은 오’설리번의 경기력과 집중력이 심한 타격을 입었음을 인정해 재경기를 허락했고 오후 세션 경기는 4-4 동점으로 마무리되었다.

저녁 세션 경기가 시작되자 오’설리번은 49분 동안 네 프레임을 연달아 이기며 8-4로 시합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데이비스가 다음 여섯 프레임을 모두 이기며 역전에 성공, 결국 8-10으로 오’설리번을 꺾고 마스터스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같은 해 4월 열린 월드 챔피언십의 첫 라운드에서 믹 프라이스와 경기를 하는 동안 오’설리번은 5분 20초 만에 가장 빠른 맥시멈 브레이크를 만들어냈다. 샷당 평균 8.8초.

이 맥시멈 브레이크는 오’설리번이 프로페셔널 대회에서 처음 기록한 맥시멈 브레이크였다. 하지만 두 번째 라운드에서 대런 모건에게 12-13으로 아깝게 지며 월드 챔피언십을 끝내야 했다.

1997/1998 시즌에 오’설리번은 헨드리를 10-6으로 꺾으며 그의 두번째 UK 챔피언십 타이틀을 손에 넣었으며, 스코티시 오픈 결승전에서는 존 히긴스를 9-5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다음 달 열린 아이리시 마스터스 결승전에서 켄 도허티를 이긴 오’설리번은 경기 후 약물 검사에서 체내에 대마초가 발견되어 자격을 박탈 당하고 우승컵을 도허티에게 빼앗기는 굴욕을 겪었다.

그 여파 때문인지 1998/1999 시즌 UK 챔피언십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고 말았고, 그의 매니저는 그가 신경쇠약 때문에 육체적 고통까지 받고 있다며 의사로부터 쉴 것을 지시받았다는 이유로 그의 토너먼트 참가를 취소했다.

이때부터 오’설리번이 우을증을 앓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해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4년 만에 세 번째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헨드리에게 13-17로 지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대회 동안 총 8번의 센추리 브레이크 기록이 작성되었는데, 그 중 헨드리가 네 차례, 오’설리번이 네 차례 만든 기록으로 헨드리가 21, 22프레임에서 101, 108의 연속 센추리를 기록하자 오’설리번은 미들 포켓에 넣을 핑크볼을 놓쳐 맥시멈 브레이크는 놓쳤으나 23프레임에서 134으로 맞섰다.

이후 오’설리번은 계속해서 24프레임에 110 브레이크를 만들며 4번 연속된 프레임에서 센추리 브레이크로 이겼다.

 


World Champion_월드 챔피언

1999/2000 시즌 동안 오’설리번은 차이나 오픈과 스코티시 오픈 등 두 개의 랭킹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나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19 프레임이 진행되는 동안 다섯 번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한 첫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첫 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2000/2001 시즌 동안에는 6개의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특히 아이리시 마스터스 결승전에서 스티븐 헨드리를 9-8로 이긴 후 계속해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존 히긴스를 18-14로 이기며 그의 첫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오’설리번은 그의 아버지에게 이 승리를 바쳤으며, 프리미어 리그 우승으로 그 시즌을 마감했다.

두 번째로 리그 무대에 선 그는 히긴스를 6-3으로 꺾고 결승에 올라 헨드리를 9-7로 꺾고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2000/2001 시즌은 그에게 최고의 시즌으로 기억되었다.

2001/2002 시즌을 시작한 그는 도허티에게 10-1로 이기며 그의 세 번째 UK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그는 2004년, 2008년, 2012년, 2013년에도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여전히 그가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해내었다.


Play Style_플레이 스타일

로니 오’설리번은 빠르고 공격적이다. 그는 많은 기록을 세운 브레이크 빌더이며, 믿음직한 전략적인 선수다.

그는 길고 지루하게 오래 끄는 경기를 싫어하며 그런 경기는 스누커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프로 선수들은 그를 훌륭한 선두주자라고 생각하고 천재라고 여긴다.

그는 오른손잡이이지만 왼손도 자유자재로 쓸수 있어 필요할 때마다 양손을 번갈아 사용한다. 1996년 그가 월드 챔피언십에서 처음으로 그의 왼손 능력을 발휘했을 때 캐나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다.

오’설리번은 상대방의 오른손보다 그의 왼손 플레이가 더 훌륭하다는 것을 입증했으나 불만을 품을 상대 선수의 공식적인 컴플레인으로 인해 징계청문회에 소환되었다.

하지만 그는 전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자인 렉스 윌리엄스와 세 프레임을 겨뤄 세 프레임을 모두 이김으로써 그가 왼손으로도 높은 레벨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Status_지위

그는 스누커 역사상 가장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선수로 평가되며, 사람들은 그를‘천재’라고 말한다. 비록 그의 신경질적인 면이 때때로 마이너스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의 또래 선수들은 그를 여전히 최고의 선수로 생각한다.

스티븐 헨드리는 2008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그에게 패배한 후,“로니 오’설리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다.”라고 인정했다.

오’설리번은 그동안 대회에 출전해 737개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며,‘쇼맨’으로 알려진 그는 일반 대중들에게 스누커의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데 일조했다.

2014년 3월, 유로스포츠와 독점계약을 체결한 오’설리번은 국제적으로 스누커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글로벌 대사로 활약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그의 게임에서의 통찰력과 여러 선수들의 인터뷰, 그리고 플레이 팁을 알려주는 네트워크를 위한 한정판 스누커 시리즈‘로니오설리번쇼’를 만든다.

그는 또한 유로스포츠-야후! 웹사이트와 월드 챔피언십 동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Personal Life_삶

런던의 부유한 교외인 엑서스의 치그웰에서 자란 그는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스누커 선수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이지만 개인적인 삶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울증으로 고통받았으며, 극심한 기분의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또한 그는 반복적인 은퇴선언으로도 유명하다.

그 단적인 예로 그는 2012/2013 시즌 동안에는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한편, 약물중독이었던 그는 약물중독자모임에서 전 여자친구인 조 랭글리를 만나 그녀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두었다.

이전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다른 딸이 있었던 그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2008년 조 랭글리와 결별한 그는 최근에는 여배우와 약혼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아버지 로니 시니어는 1992년 살인죄로 투옥되어 18년간 수감되어 있었으나 로니 오’설리번과의 관계는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돈독했다.

오’설리번은 월드 챔피언에 오른 영광을 아버지에게 바쳤으며, 그의 아버지는 2004년에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아들을 위해 세계 챔피언인 레이 리어든에게 6차례나 전화를 해 오’설리번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결국 리어든의 도움으로 오’설리번은 자신의 폼을 회복했고, 2004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로니 오’설리번은 완벽주의자다. 그는 심지어 승리를 한 후에도 강도 높게 자신을 비판하곤 했다. 스포츠 심리학자인 스티브 피터스는 그와 함께 일하며 그의 우울증과 약물중독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자동차 경주를 취미로 즐기고 있는데, 2004년에는 탑기어에‘합리적인 가격의 자동차의 스타’로 등장했으며, 그는 탑기어의 스티그가 오’설리번의 147번 번호를 단 메르세데스 SL500을 타고 트랙을 도는 동안 그보다 빠르게 스누커 테이블 위의 4개의 빨간공을 비롯한 다른 모든 색의 공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열성적인 축구팬으로 아스널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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