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회 세계3쿠션당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토브욘 블롬달.  사진=이용휘 기자
제74회 세계3쿠션당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토브욘 블롬달. 사진=이용휘 기자

토브욘 블롬달(스웨덴)이 올해로 '이순', 60세를 맞았다.

웬만한 스포츠 종목에서는 은퇴를 했어도 진작 은퇴를 했어야 하는 나이지만, 60세의 블롬달은 지난 10월 네덜란드 베겔에서 열린 '2022 베겔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결승전에서 한국의 이충복(시흥시체육회)을 21이닝 만에 50: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스웨덴의 유일한 3쿠션 세계 챔피언인 블롬달은 세계선수권대회 7회 우승을 비롯해 3쿠션 세계월드컵 우승 45회 등 불멸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 27회의 월드컵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딕 야스퍼스(네덜란드)라도 쉽게 깨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사대천왕'이라 불리던 전설적인 당구선수도 육체의 노쇠는 막을 수 없었다. 50대에 들어 허리디스크로 한동안 고생했던 블롬달은 올해 초 당뇨로 인해 10킬로 이상 체중이 빠지며 팬들을 걱정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협적인 블롬달은 최근 베겔 3쿠션세계월드컵에서 강적인 세미 사이그너(튀르키예)와 다니엘 산체스(스페인)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라 5년 만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고 최다 우승 기록을 하나 더 추가했다.

하지만 강원도 동해에서 열린 '제74회 세계3쿠션당구선수권대회'에서는 32강전에서 한국의 조명우(실크로드시앤티)에게 25:50으로 대패하며 8번째 세계 챔피언을 향한 도전을 마감했다.

6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협적인 당구선수인 토브욘 블롬달을 세계3쿠션당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동해에서 만났다.

토브욘 블롬달.  사진=이용휘 기자
토브욘 블롬달. 사진=이용휘 기자

올해로 60세가 됐다. 당구 경력은 총 몇 년째인가?

10살이던 1973년 1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당구를 치기 시작했으니 49년이 됐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나?

당구선수이던 아버지가 그날 빌리어드클럽을 오픈했다. 내년이면 50주년이 된다.

 

처음 당구를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비디오게임과 체스게임, 주사위 놀이 같은 어린애들 게임처럼 재밌었다. 처음부터 3쿠션을 치진 않았다. 포켓볼이랑 5핀 경기로 당구를 처음 배웠다. 1년 뒤에야 3쿠션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배우기는 3쿠션이 어렵지 않았나?

그냥 재밌는 게임 같아서 한 번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어려운 것을 푸는 걸 좋아한다.

 

49년의 당구 인생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

두 명이다. 당구선수인 아버지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그다음은 일본의 고바야시 노부아키 선수다.

처음 나간 국제대회에서 고바야시 선수를 만났는데, 당시 그는 매우 유명한 일본의 세계 챔피언이었다. 그를 만나서 너무 기뻤고, 그의 예의 바른 자세와 당구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후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스웨덴 선수로는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다. 동료가 없어서 좀 외로웠을 것 같은데.

선수 생활 초창기에는 좀 외로웠다. 스웨덴 선수가 거의 없고, 베스트플레이어 중에서는 스웨덴 선수가 나밖에 없어서. 국제대회에 나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독일의 마틴 혼 선수나 이탈리아의 마르코 자네티와 가깝게 지내게 됐고, 또 같이 연습하는 시간도 많아지면서 도움이 많이 됐다.

최근에는 한국의 김준태 선수나 알레시오 다카타 선수와 같이 연습하면서 당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스웨덴 선수 중에는 미카엘 닐손 선수와 같이 많이 연습해왔다.

 

'4대 천왕'이라 오랫동안 불리고 있는데, 이런 최고의 칭호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물론 부담이 된다. 사람들은 우리가 항상 이길 거라고 기대하고 있고, 이기면 당연하지만 지면 실망하니까 그런 게 좀 부담이 되기도 한다.

 

'4대 천왕' 블롬달이 생각하는 자신의 영원한 라이벌은 누구인가?

딕 야스퍼스다. 매우 어려운 선수다. 마치 돌 같은. 가끔은 부서지기도 하지만.

 

한국 선수와 많은 교류를 해오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

이상천은 정말 특별한 선수였다. 이상천은 한국 당구뿐 아니라 전 세계 당구에 중요한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이자 좋은 친구였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그립다.

지난 10월 베겔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서 무려 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왕좌를 탈환한 토브욘 블롬달이 단상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 사진=Ton Smilde
지난 10월 베겔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서 무려 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왕좌를 탈환한 토브욘 블롬달이 단상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 사진=Ton Smilde

지난번 베겔에서 뜻깊은 우승을 한 반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32강전에서 조명우에게 일격을 당했다. 무려 25점 차이로 졌는데, 이전에도 이렇게 큰 점수 차이로 진 적이 있었나?

때때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예전에 포툼에게 6:50으로 진 적도 있었다. 경기에서 공이 잘 안 풀리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작년에 세계선수권에서 에디 멕스와의 대결도 똑같다. 그때도 25:50으로 졌는데, 나에게 기회가 없었다. 브레이크 타임도 똑같이 5:25였다.

 

유독 조명우와의 이번 대결에서는 공격 성공률이 떨어져 보였다.

조명우가 수비한 공을 풀려고 노력했는데, 안되면서 나는 조명우에게 의도치 않게 좋은 공을 주게 되고, 또 나는 조명우에게 난구를 받고.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물론 조명우 선수가 잘 치기도 했다.

 

선수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큰 경기는 아니었는데, 지역 리그에서 에디 멕스와 15:47이었던 점수를 결과적으로 50:50으로 끝냈던 것.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다가 뒤집을 수 있는 당신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냥 포기하고 친다. 이게 가장 큰 비밀이다.(웃음) "그래, 좋아. 니가 이길 테면 이겨" 이런 마음으로 욕심을 버리면 가끔 좋은 결과가 나온다.

반면, 이기려고 계속 파이팅하면 오히려 더 안 된다. 포기했을 때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다.

 

당구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바로 지금이다. 계속 늙고 있으니까. 나는 나이가 들면서 애버리지가 조금씩 떨어지는데 오히려 젊은 선수들은 치고 올라오니까 그런 복합적인 상황이 지금 가장 힘들다.

 

한동안 허리 디스크로 고생도 하고, 최근에는 부쩍 살이 빠진 모습이라 팬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허리는 이제 괜찮은데, 올해 3월에 당뇨 때문에 6주 동안 10kg 정도 살이 빠졌다. 그 후에 식단 조절을 하면서 현재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고, 살뿐 아니라 근육도 같이 빠져서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 덕분에 팔 힘과 코어 힘도 많이 회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겔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자신을 비롯해 야스퍼스나 자네티 등 또래 선수들이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구에서는 경험이 경기에서 이기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사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당구선수로서는 경험치가 더 많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다.

이건 마치 사업가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스킬을 가지고 사업을 확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당구선수로서는 나이가 들어가는 게 결코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더 많이 알아가게 된다. 

2012년 수원 세계3쿠션월드컵에 출전한 토브욘 블롬달.  사진=빌리어즈 자료
2012년 수원 세계3쿠션월드컵에 출전한 토브욘 블롬달. 사진=빌리어즈 자료

블롬달 선수는 창조적인 샷을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별한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나?

내가 방어적인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창조적인 샷을 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지 특별히 창의적인 샷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다른 선수들은 어려운 포지션의 경우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일단 수비를 하는데, 나는 무조건 점수를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점수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다른 선수들이 시도하지 않는 창의적인 기술이 나오는 것 같다.

 

45회 월드컵 우승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깨질 수 있을 것 같은가? 

만약 누가 이 기록을 깬다면 그 주인공은 딕 야스퍼스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야스퍼스도 이제 너무 늙었다.(웃음) 지금은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져서 한 선수가 계속 우승을 독식할 수 있는 확률이 없다. 내가 우승을 많이 하던 그때는 나보다 강한 선수가 많지 않아서 가능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좋은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다.

 

많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몇 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나?

이제 한국어까지 12개 언어를 말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녹다운됐을 때,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해서 2년 정도 꾸준히 매일 30분씩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으면서 TV나 보고 놀고만 있으니까 아들이 왜 한국어 공부를 안 하냐고, 한국어 공부라도 하라고 앱을 추천해줬다. 그때부터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단어는 많이 아는데, 문장으로 연결하는 건 여전히 좀 어렵다.

 

코로나19 때는 어떻게 지냈나?

2019년에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계속 경력을 연결해 나가야 하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모든 게 다 멈췄다. 당구클럽도 문을 다 닫아서 연습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1년 동안 연습도 못 하고 있으면서 '나는 계속 늙고 이제 내 당구선수 경력은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후 연습할 공간을 임대하고 그때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1년이나 놀았는데 너무 늦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매일 연습하면서 감각을 되찾았다.

 

당구선수로서의 지금까지의 삶은 만족스러운가?

대부분 만족스럽다. 100%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만족한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이 스포츠를 지배하고 있던 그 당시에 좀 더 노력해서 더 많이 발전했어야 했는데, 그걸 놓친 것 같아 좀 아쉽지만 지금 내 모습은 전반적으로 마음에 든다.

 

타 유명 스포츠 종목에 비해 돈을 벌 기회는 없었는데, 아쉽지는 않은가?

돈을 많이 못 버는 건 사실이고, 돈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항상 돈이 제일 중요한 건 아니다. 내가 이 스포츠를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당구가 나를 발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구는 나에게 너무 환상적인 스포츠다.

일부 종목 선수들은 돈은 많이 벌었지만 은퇴 후 그 운동의 이름조차 듣기 싫어하는 선수들도 굉장히 많다. 전성기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지쳤기 때문인데, 반면 나는 60세에도 여전히 이 스포츠가 너무 좋고, 경기도 빨리 보고 싶고, 매일매일 이걸 치고 싶고, 이게 너무나도 행복하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슬럼프라고 느낀 시기도 있었나?

누구나 슬럼프는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특별히 슬럼프라기보다 당구 자체가 너무 어렵다. 양궁처럼 과녁을 정해놓고 맞추는 게 아니라 당구는 포지션을 내가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잘 쳤는데 미세하게 안 맞으면 실패한 샷이다. 점수가 안 나와서 경기에서 연속으로 지면 사람들은 슬럼프라고 말하지만 그냥 경기에서 진 것뿐이다.

고바야시나 이상천 같은 선수도 경기에서 이긴 후에 "잘 쳤어, 멋진 경기였어"라고 하면 "아니, 단지 포지션이 좋았다, 공이 잘 섰을 뿐이야"라고 항상 말했다. 중요한 포인트다.

절대 놓칠 수 없는 공이 계속 오면 맞출 수밖에 없는 거고, 또 어떤 때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포지션의 공이 오면 또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게 결국 경기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운 좋게 계속 이길 수도 있고 계속 질 수도 있다. 그게 당구다. 베겔에서는 쉽게 칠 수 있는 공들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이번에는 어려운 공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 출전한 토브욘 블롬달. 부쩍 야윈 모습으로 등장해 많은 당구 팬들이 걱정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 출전한 토브욘 블롬달. 부쩍 야윈 모습으로 등장해 많은 당구 팬들이 걱정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특별히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지는 않다. 그저 경기를 즐길 뿐이다. 다른 선수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사실 행복한 일이다. 물론 많지는 않겠지만 우승을 할 수도 있을 거고, 그저 나는 내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우승이 아니더라도 준결승에만 가더라도 만족한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할 거다.

 

자신의 은퇴 시기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있나?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다. 다만, 후원사와의 계약 덕분에 최소한 앞으로 3년은 더 당구를 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블롬달처럼' 당구를 잘 칠 수 있을까?

연습을 많이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또 그만큼 많은 시간을 경기를 보면서 배워야 한다. 특히 자신의 실수에서 배우고, 그 실수를 고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선수로 당구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공정한 선수로서 젊은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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