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 사이그너와 인터뷰를 하면서‘디퍼런트 씽(different thing)’이라는 두 단어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사이그너가 당구선수로 활동을 보이콧한 이유도 그 두 단어에 들어 있었다.

터키당구연맹이 당구와 당구선수를 위한 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임무 외에 다른 목적,‘디퍼런트 씽’을 갖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이그너는 그것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회사와 같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단체는 엄연히 비영리 단체이며 국민의 세금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아 종목과 선수를 서포트해야 하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둘 수 없다. 그런데 연맹 집행부가 이런 본연의 임무보다는 다른 목적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에 사이그너는 이를 되돌리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런데 이‘디퍼런트 씽’은 꽤 잔인하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얻어가길래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선수 하나를 저리도 무참하게 제거시킬 수 있는 것일까?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선수단체 임원들이라는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만행을 끝내 보다 못한 사이그너가“썩은 너희가 나가기 전까지 나는 선수활동을 중단하겠다”며 스스로 둔 초강수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기까지 연맹 측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도 웃긴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선수 활동 보이콧’을 선언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터키연맹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선수 한 명을 배척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선택을 했다.

과연 사이그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타협점이 없었던 것일까?

타협점을 찾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이그너의 요구는“당신들이 노리는‘디퍼런트 씽’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어떤 단체든지 누군가 이런 문제를 거론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발단이 되는 개인적인 비즈니스를 더 이상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단체 목적에 맞게 단체를 운영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아도 된다.

터키연맹도 마찬가지로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총 사퇴 요구의 원인이 되는‘디퍼런트 씽’을 버리고 연맹이 가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사이그너와 터키 당구가 7년의 세월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사이그너의 요구는 7년 동안이나 관철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중 역시 사이그너가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해 연맹 집행부와 감정이 상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그쳤다.

사이그너를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월드컵 출전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유럽 리그 출전 승인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등의 스포츠 단체라는 곳에서 해서는 안 될 이상한 행위를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문제의 발단이 된‘디퍼런트 씽’은 철저히 숨겨졌다. 대리하고 있는 권한을 악용하여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비즈니스를 하려면 숨겨야 할 것도 많고 감춰야 할 것도 많다. 그쯤되면 장애물은 넘어야 할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 된다.

사이그너 외에 다른 선수들이 나서지 못한 이유다. 권력 앞에 사이그너조차 무너지는 상황에서 누가 앞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이그너 편을 드는 용감한 선수나 관계자는 나오지 않았다. 사이그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터키연맹처럼 국가대표 선발권, 선수 파견권, 선수 보호권, 선수 징계권 등을 직접 행사하고, 이를 권력으로 둔갑시켜 또 다른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폐단이 발생하면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언론에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당구인과 함께 철저하게 지켜보지 않으면 한국이라고 이런 폐단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결과론적으로 10년간 미디어에서 외면당하고, 대중에게 멀어진 터키 당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디퍼런트 씽’을 멈추라는 사이그너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정상적인 운영을 했더라면 반대로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는 터키 당구계에서 일어났던 지난 일을 그냥 듣고 흘려서는 안 된다. 연맹은 선수 위에서 권력과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가 아닌, 권한의 대리자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언론은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당구선수와 당구인들은 행정의 과정과 결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과연 이런 시스템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우리에게도 이런‘디퍼런트 씽’의 문제가 없는지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한다.

만약 당구계 어딘가에 존재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터키당구연맹 전 집행부의 전철을 되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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