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계 모든 단체가 하나로 통일" vs "원로가 왜 현역 선수 조직에 참여하나"

끝내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 원로회(개칭 한국당구원로회)'와 '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로 양분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월간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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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97년 3월 26일 열린 한국당구인원로회의 제124회 월례대회, 97년 12월 3일 열린 KBPA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에서 특별회원으로 입회한 벽산그룹 김희용 회장의 경기 장면, 97년 8월 28일 이태원 크라운호텔 태한각에서 열린 제16차 정기총회에서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 편입을 결의하는 한국당구인원로회 총회.  월간 빌리어즈 자료사진

◼ 1997년 정기총회에서 조동성 회장도 눈치 못 챈 기습 제안

한국당구인원로회는 1996년 7월에 제9대 회장으로 조동성을 선출하고 그해 결산행사에서 조동성을 초대 ‘명인’으로 추대하며 당구계의 ‘어른’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해가 바뀐 1997년 1월 22일에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김철민당구클럽에서 제122회 월례대회를 개최하고, 2월에는 부산시 광안리의 남성당구클럽(대표 안철홍)에서 제123회 월례대회를, 3월 26일에는 경기도 산본의 김시창당구원에서 회원 27명이 참가한 제124회 월례대회, 5월 22일에는 전북 장항의 황실당구장(대표 최기환)에서 제126회 월례대회를 여는 등 매월 1회 정기적으로 회원의 친목과 단합을 이루기 위한 모임을 이어 갔다. 

한국당구인원로회는 1996년 8월 28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소재 크라운호텔 별관 대한각에서 제16차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임기 1년의 조동성 회장의 후임 회장과 임원 개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재적 회원 중 22명이 참석해 성원이 된 총회의 개회사를 통해, 조동성 회장은 회원들의 협조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김천경 감사의 재정 회계에 대한 감사보고가 있은 다음, 최종수 부회장은 원로회 운영과 활동사항에 대한 보고에 이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최 부회장은 “그간 원로회를 활동면에서 볼 때 후배나 업계, 협회 등으로부터 크게 환영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대한스포츠당구협회(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의 전신)가 대한체육회에 가맹하는 것을 계기로 특별회원 자격으로 대한스포츠당구협회에 가입하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전격 제안했다. 그리고 김문장이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가맹하기 위해서는 당구계의 모든 단체가 하나로 통합을 이루는 것이 전제이므로 원로회도 산하에 들어가야 한다고 보충 설명을 했으나, 회원들은 원로들이 현역 선수와 함께 조직에 참여하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은 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재차 김문장이 추가 설명을 하며 가입할 것을 종용하자 조동성 회장은 “스포츠당구협회 측에서 원로회 측에 충분히 설명하지도 않은 홍보 부족의 상태이므로 차기로 미루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몇몇 핵심 회원 중심으로 합의가 모인 듯 일부 회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선 들어가기로 하고 해결하자고 하는 제안에 대해 박수로 강행처리하는 결의를 했다. 이로써 한국당구인원로회는 졸지에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원로회’가 되었다.

이날 한국당구인원로회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로 편입됨에 따라 차기 회장은 선출되지 않았으며, 이윤석, 김용석, 정인수, 최창윤, 양명수, 김문장, 최종수 회원 등이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어 회장 선출 여부 및 기타 제반 사항에 대해 협의키로 했다.

 

◼︎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 원로회, ‘한국당구원로회’로 개칭

정기총회가 있은 다음 9월의 제129회 월례대회 정기모임에서는 조동성 회장에 이어 제10대 회장으로 연장자인 조행선을 선출하고 부회장 최종수는 유임되었다. 이날 결의한 중요 내용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로 원로회가 편입하기로 했으나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단체명은 ‘한국당구원로회’로 하고, 월례대회 개최 시 현수막에는 ‘주최: 한국당구원로회, 후원: 대한스포츠당구협회’라고 표시했다.

1997년을 마감하는 제132회 월례대회와 ‘당구인의 밤’이 12월 15일 경남 마산시 삼천당구장(대표 공명국)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월례대회에는 회원 20명이 참가해 청룡조(국제식 3쿠션 경기)와 백호조(4구 경기)로 진행되었다. 8명이 출전한 청룡조에서는 우승 박원조, 준우승 김용석, 공동3위 김문장・이흥식, 12명이 출전한 백호조에서는 우승 이재웅, 준우승 박상준이 차지했다. 이어서 진행된 97 당구인의 밤 행사에서는 특별공로상 김용석, 공로상 박원조, 모범당구인상 정인수, 최우수 선수상 김철민 등이 선정되었다. 

해가 바뀌어 1998년 1월 23일에는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인정종목으로 가맹되었다. 한국당구원로회(회장 조행선)는 2월 26일 경기도 산본의 김시창당구원에서 제134회 정기월례대회를 개최했다. 월례대회 경기에 앞서 운영 및 집행위원 회의를 열었는데, 이 회의에서 대한체육회에 인정종목으로 가맹된 대한스포츠당구협회에 한국당구원로회가 특별회원으로 등록하는 것을 결의했으며, 회원 각자의 가입비는 5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정기평가전 결과는, 3쿠션 부문은 우승 김성웅, 준우승 김용석, 공동 3위 박원조・김천경, 4구 부문에서는 우승 박상준, 준우승 양명수, 공동 3위 조행선・조연흥이 차지했다.

 

◼︎ 한국당구원로회와는 따로 ‘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 정기평가전’ 열어

한국당구인원로회의 1997년 8월 제16차 정기총회에서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의 원로회로 전격 편입되는 결의가 있은 후 이에 동의하지 못한 회원들은 그들의 거취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그해 7월에  대한체육회 가맹을 목적으로 한 단체 통합에 참여했던 대한당구선수협회 측이 통합 이후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임원들의 단체 운영의 독선과 난맥상에다 98 방콕 아시안게임의 선수 선발의 불공정성에 불만을 제기하며 통합 불과 3개월 만에 탈퇴를 선언하고, 1997년 10월 6일 대한당구선수협회 재창립 정기총회를 열었다. 그리하여 대한당구선수협회(회장대행 고창환) 내에 시니어부를 두기로 하고 11월부터 ‘KBPA(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을 실시했다. 

11월 3일에 ‘제1회 KBPA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을 서울시 논현동의 팬더당구장(대표 신항균)에서 시작해 매월 정기적으로 개최했으며 제4회까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제1회 KBPA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의 경기에 앞서 진행된 개회식에서 대한당구선수협회 고창환 회장대행은 “그동안 당구계의 선배님들에게 너무 소홀했던 점 깊이 사과드리며 앞으로는 후배들이 더욱 잘할 것을 약속드린다. 그 첫 번째로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을 정기적으로 마련해 여러 선배님들이 계속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는 여러 선배님들의 자리이므로 앞으로도 많이 참석해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는 16명이었으며 국제식 3쿠션 15점제 경기를 진행했다. 김시창, 양안정, 김석구, 신항균, 박병문, 안지수, 홍종락, 강현복 회원 등이 8강에 올라 우승 박병문, 준우승 안지수, 공동 3위 신항균・강현복이 차지했다. ‘제2회 KBPA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은 12월 3일에 열렸으며, 특별회원으로 벽산그룹 김희용 부회장이 가입함으로써 회원은 18명이 되었다.  경기 방식은 제1회 평가전과 달리 핸디 게임으로 치러졌고, 8강에는 김시창(핸디 18점), 양안정(17점), 신항균(20점), 양귀문(18점), 박병문(22점), 김신(17점), 김동수(20점), 김희용(13점)이 진출해 우승 박병문, 준우승 양귀문, 공동 3위 김희용・양안정이 차지했다.

‘제3회 KBPA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은 1998년 1월 7일 12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3쿠션 핸디 경기로 열렸다. 8강에는 김희용(핸디 13점), 김명석(15점), 김시창(18점), 안지수(21점), 박병문(24점), 김신(17점), 김동수(20점), 신항균(20점)이 올라 우승 박병문, 준우승 신항균, 공동 3위 김희용・김신이 차지했다. 이로써 박병문은 3회 대회까지 연속 우승했다. ‘제4회 KBPA 시니어부 정기평가전’은 2월 4일 11명의 회원이 참가했다. 3쿠션 핸디 경기를 진행한 결과, 8강에는 박병문, 김동수, 안지수, 강현복, 김신, 신일우, 신항균, 양안정이 진출해 박병문이 4회 연속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준우승은 3회에 이어 신항균이 차지했으며, 공동 3위는 강현복과 안지수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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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97년 11월 3일에 열린 제1회 대한당구선수협회(KBPA) 시니어부 정기평가전 경기 장면과 기념 사진, 98년 5월 28일 압구정동 사회체육당구센터에서 열린 한국당구원로회와 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의 통합 대회, 한국당구원로회(회장 조행선)로 개칭한 후 98년 2월 26일 열린 제134회 정기월례대회.  월간 빌리어즈 자료사진

◼︎ 1998년 5월 한국당구원로회・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 통합대회 개최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임원들의 독선과 이기적인 협회 운영에 반발해 1997년 10월 6일에 재창립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독자 노선을 천명했던 대한당구선수협회(회장대행 고창환)는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1998년 1월 23일에 대한체육회에 인정종목으로 가맹되고, 12월에 개최되는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국가대표를 선발해 훈련에 임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버티기만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재창립 6개월 보름 만인 1998년 4월 20일에 재통합을 선언하고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임영렬 회장 취임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자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의 한국당구원로회와 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의 통합도 자연히 논의되었다. 우선 양쪽으로 갈라져 치르던 월례대회를 단일대회로 개최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져 1998년 5월 2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사회체육당구센터에서 ‘한국당구원로회·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 통합대회’로 열렸다. 이날 통합대회에는 양쪽 회원들에게 통합의 취지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22명이 참석했다. 전해 8월 정기총회 후 9월 월례대회부터 만나지 못한 회원들이 다시 재회하는 자리였다. 

먼저 당구 경기로 그간 소원했던 친목을 도모했다. 경기 종목은 국제식 3쿠션과 4구로 나뉘어 치러졌는데, 국제식 3쿠션 부문에는 16명이, 4구 부문에는 6명이 출전했다. 국제식 3쿠션의 8강에는 이흥식, 김성웅, 김동수, 김천경, 박병문, 신부호, 강현복, 안지수가 진출해 우승 김동수, 준우승 안지수, 공동3위 이흥식・신부호가 차지했다. 4구 부문의 4강에는 조연흥, 양명수, 최기환, 정광일이 올라 우승 양명수, 준우승 최기환이 차지했다. 대회를 마감한 후 한국당구원로회와 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 회원들이 구체적인 통합을 논의하기 위해 대회장 인근의 한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의에서 시니어부의 신항균은 현재 당구계가 대한스포츠당구협회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원로회도 체육회가 인정하는 단체로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당구원로회 회원들은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원로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을 결성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므로 원로회를 처음 창립한 원로들의 의견을 들어본 후 결정하자고 했다.

결국, 이날 모임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양측에서 대표를 정해 통합에 대한 협의를 하기로 했는데, 원로회 측에서는 조동성, 최종수, 양명수, 정인수가 지명되었고, 시니어부에서는 박병문, 신항균이 지명되었다. 그러나 두 단체 간의 의견이 판이해 조속한 시일 내에 결론이 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었다. 

 

<월간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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