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2월 19일, 한국당구인원로회 주최로 열린 행사서 조동성 원로 '초대 당구 명인' 추대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월간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명인 추대에 앞서 열린 전북도지사배에서 우승한 3쿠션 청룡조의 송근호(왼쪽)와 4구 백호조 최기환.  빌리어즈 자료사진
명인 추대에 앞서 열린 전북도지사배에서 우승한 3쿠션 청룡조의 송근호(왼쪽)와 4구 백호조 최기환. 빌리어즈 자료사진

◼︎ 제121회 월례대회 겸 1996년도 결산대회를 제3회 전북도지사배 당구대회와 함께 치러

한국당구인원로회(회장 조동성)의 제121회 월례대회를 겸한 1996년도 결산대회가 제3회 전북도지사배 당구대회가 열린 전주실내체육관에서 1996년 12월 18, 19일 2일간 동시에 치러졌다. 대회 자체도 성대히 개최되었지만, 대회 폐회식이 끝난 뒤 대회 주최 측인 대한당구협회 전북지회(회장 정인수)가 한국당구인원로회 회원들을 위해 마련한 송년 모임인 ‘당구인의 밤’에는 한국 당구계에 공헌한 명인 추대를 하는 등 각종 시상 행사가 거행되어 원로회 창립 후 최대 최고의 푸짐한 한마당 잔치 자리가 되었다.

제121회 월례대회를 겸한 1996년도 결산대회는 3쿠션 20점치기 단판 승부의 청룡조와 각자 지점(핸디)별 4구 백호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경기 결과, 청룡조에서는 우승 송근호, 2위 조행선, 공동 3위 김문장·최종수, 백호조에서는 우승 최기환, 2위 홍경식, 공동 3위 이윤석·기동차가 각각 순위를 차지했다. 전북도지사배 당구대회의 폐회식과 더불어 거행된 시상식에서 우승자에게는 대형 트로피와 상금이 수여되었다.

당구계 '초대 명인'으로 추대된 조동성.  빌리어즈 자료사진
당구계 '초대 명인'으로 추대된 조동성. 빌리어즈 자료사진

◼︎ 대한당구협회 전북지회가 마련한 당구인의 밤 행사에서 조동성을 ‘명인’으로 추대하고 격려금 전달

폐회식이 끝난 뒤 자동차로 약 20분 소요되는 전주시 외곽의 ‘크리스마스 카페’의 연회장 전면 무대에는 ‘96년 송년모임. 당구인의 밤. 원로회 송년모임을 축하합니다. 대한당구협회 전북지회’라고 쓴 대형 장식물이 걸려 있었다. 밤 8시 30분, 때마침 성탄절을 앞둔 절기라 연회장 안은 온통 크리스마스 기분으로 가득했다. 한국당구인원로회 회원 약 20명을 비롯해 이 지역뿐 아니라 서울에서 참석한 당구인들 약 150명이 흥분된 분위기 가운데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1부 시상식 순서에서는 정인수 전북지회장이 먼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제3회 전북도지사배를 성황리에 개최할 수 있도록 해준 관계자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드리며, 이런 기회를 빌려 당구계를 위해 몸 바쳐 온 원로들을 모시고 송년의 밤까지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록 부족한 자리지만 뜻깊은 당구인의 친목의 밤이 될 수 있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며, 새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찾아오기를 빈다”고 전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한국당인원로회가 이 해 처음으로 선정한 각 부문의 수상자 발표 순서였다. 최우수선수상은 장성출이 수상했으며 상패와 격려금 30만원이 수여되었다. 최우수 신인상은 김재홍으로 발표되어 상패와 격려금 20만원이 주어졌다. 최우수생산업체는 (주)한밭(대표 권오철)이 선정되었으며, 최우수당구클럽상에는 김시창당구원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모범당구인상에는 양명수 회원이 뽑혀 상패와 개인큐를 부상으로 받았고, 특별공로상은 김문장 회원이 선정되었는데, 방송매체를 통한 당구 홍보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상패와 격려금 100만원이 수여되었다.

마지막 시상 순서는 ‘명인 추대’였다. 미국에서 매년 BCA(미국당구협외회)가 당구무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실시하고 있는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는 당구인을 선정하는 것과 같은 취지로 한국에서는 이 해 처음으로 시도했는데, 과연 어떤 인물이 선정될지 관심과 큰 기대가 쏠렸다. 발표된 ‘초대 명인’은 한국당구인원로회 조동성 회장이었다. 그의 이름이 발표됨과 동시에 단상 벽면의 한쪽 휘장이 걷어지면서 한복 차림으로 큐를 잡고 있는 조동성의 대형 사진이 나타났다. 이어 등단한 조동성에게 축하의 화환 세례가 베풀어지고 만장의 환호가 터지자 감격을 주체하지 못한 조동성은 끝내 눈물을 삼키며 울먹였다. 조동성에게는 명인패와 원로회 회원들이 마련한 뜻깊은 격려금 1만달러(약 870만원)가 전달되었다. 

장내에 환호가 터지자 감격스러워 하는 조동성 초대 명인.  빌리어즈 자료사진
장내에 환호와 함께 감격스러워 하는 조동성 초대 명인. 빌리어즈 자료사진

초대 명인으로 추대된 조동성은 답사에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뭐라고 이 감사를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당구가 전래된 후 100년 가까운 세월이 되어 가는데, 그 사이 당구 발전을 위해 공헌했던 선배와 친구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대부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보니 부족한 저에게 이런 상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내가 14살에 당구를 치기 시작해 이날까지 오늘처럼 이렇게 기쁘고 보람을 느낀 일도 별로 기억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세상이 변해 당구도 아시안게임 종목에 채택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므로 나의 여생도 힘닿는 데까지 당구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밝혔다. 엄동렬의 사회로 진행된 제2부 순서인 ‘당구인의 밤’은 밤늦은 시간까지 무르익어 갔다.

초대 명인으로 추대된 조동성은 192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14살에 처음 당구 큐를 잡았으며,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 재학 중에 일본에 건너가 가쓰라 마사코, 노리코 자매를 만나 일본의 선진 당구를 접하고 만주에도 가서 중국 대륙의 당구도 익혔다. 광복 후 1956년 제1회 대한당구협회 주최 전국당구선수권대회 최고조에서 우승, 1957년 국제신보사 주최 전국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우승(대대)했다.

1974년 제4회 한일친선당구대회 국가대표, 1975년 제5회 한일친선당구대회 선수단장과 이후 5회에 걸쳐 심판장을 역임했다. 1980년에는 <내가 본 당구사>와 <당구입문>을 저술하고, 1972년에 서울빌리아드연구회를 조직해 선수 지도와 기량 연마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삼구회, 대한당구선수회, 대한당구회 회장을 맡았고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경기이사도 수행했다. 또한, 그는 당구대와 고무쿠션, 당구 큐 등의 제조에 자문도 함으로써 한국의 당구용품 발전에 기여했다. 

 

<월간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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