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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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어즈=김민영 기자] 2000년대 초반, 10대의 김가영(신한금융투자)이 세계 포켓볼 무대에 등장하자 전 세계 포켓볼 팬들은 그녀를 ‘작은마녀’라고 불렀다. 한국의 포켓볼 선수가 낯설었던 시절에 한국의 유망주 김가영이 세계 무대에서 선보인 날카롭고 냉정한 플레이에 열광하던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김가영은 2004년과 2006년에 9볼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한국 당구선수 최초의 세계선수권 우승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2012년에 김가영은 10볼 종목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개인통산 3회와 포켓볼 두 종목(9볼, 10볼)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는 기록을 세웠다.

20년 이상 포켓볼 선수로 세계를 누비며 이제는 그 무대에서 더 오를 곳조차 없어 보였다. 김가영이 한국 당구 130년의 역사 동안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선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아직도 현역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우승 기록을 쌓아올릴 선수임이 분명했다.

지난 2019년 당구계 '거대 권력'이 휘두른 칼에 강제로 포켓볼 선수 생명이 끝나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김가영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포켓볼 선수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이 없다. 

평생 포켓볼만 쳐왔던 김가영에게 포켓볼 선수 자격을 박탈하고 세계대회 출전을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떠밀리듯 포켓볼 선수로 강제 은퇴를 하게 된 김가영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평생 몸에 익혀온 타법과 기술을 개조해 캐롬 3쿠션 종목으로 도전하는 것이 유일하게 당구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었다.

여자 프로당구(LPBA) 도전에 나서던 김가영은 이처럼 정신적, 육체적으로 누구보다도 큰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30년을 갈고닦은 당구 기술과 몸에 굳어진 자세와 타법을 고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아파하거나 상심에 빠질 겨를 없이 온종일 3쿠션 연습에 매진했고, 결국 LPBA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김가영은 '포켓볼여제'에서 '당구여제'로 거듭나는 전무후무한 일을 이루었다.

LPBA 투어에서 여섯 번째 출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던 김가영은 다음 시즌에는 왕중왕전인 'LPBA 월드챔피언십' 결승에까지 올라갔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이어서 1년 만에 다시 왕중왕전 결승에 진출해 2년 연속으로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했던 김가영은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며 '여자 3쿠션 월드챔피언' 타이틀까지 획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한국 최초의 당구 세계챔피언에서 포켓볼 세계 무대를 정복한 '포켓볼여제'로, 그리고 캐롬 3쿠션 프로 무대로 자리를 옮겨 '왕중왕'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따내고 모름지기 '당구여제'가 되기까지 김가영을 만나 그 과정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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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BA 월드챔피언십 우승 축하한다. 

이제 막 한시름 났다. 그동안 나에게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나 평가 기준이 다른 선수들보다 높다보니 부담이 컸다. PBA로 올 때 나는 잃을 게 많았다. 혹시 내가 그동안 포켓볼에서 쌓아온 경력까지 여기서 잃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첫 시즌에도 여섯 번째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이미 김가영의 가능성을 증명한 것 아닌가?

아니다. 나는 그 우승이 운이 좋았던 것뿐인걸 알고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생각하는 우승은 아니었다. 당시는 LPBA가 시작하는 상황이라 누가 우승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너무 불안한데 우승도 너무 빨랐다. 

특히 첫 시즌에는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다. 포켓볼 아카데미도 운영해야 했고 3쿠션에 몰두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포켓볼 아카데미를 정리하고 두 번째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3쿠션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 월드챔피언십 우승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은 그래도 어떤 그 부담감을 버티고 갈 만큼의 실력이 조금 쌓인 것 같다. 포켓은 20년을 넘게 했는데, 3쿠션은 이제 고작 2년이 좀 넘었을 뿐이다. 시합 열몇 개 뛰었을 뿐인데 톱클래스라고 평가하는 게 사실 말이 안 된다. 

지난 3년 동안 힘든데도 힘들다는 말을 거의 못 했다. 스스로 누구에게 잘 기대지 못하는 성격이라. 포켓볼 때부터 그랬다. 어린 나이부터 혼자서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기댈 사람도 없고 누구에게 어리광도 부려보지 못했다. 아마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고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을 거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예를 들면?

한번은 시합 전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예 팔을 쓸 수가 없었다. 당구 자체를 아예 칠 수가 없는 상태라 바로 패자로 떨어졌다. 그것도 팔 대 빵으로. 그 대회가 암웨이배였는데, 진통제를 맞으면서 이 악물고 경기를 해서 그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또 한 번은 미국에서 시합을 하는데 급성 포도막염이 와서 한쪽 눈이 완전히 새빨갛게 충혈이 됐다. 눈이 너무 시려서 빛을 아예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도 한쪽 눈을 거의 뜨지 못하는 상태에서 왕중왕전을 우승했다.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미국으로 대회 참석차 가는 중에 비행기 안에서 뭔가에 감염이 됐는지 결승전 때 다래끼가 심하게 났다. 방송 시합 중인데 눈을 뜨긴 떠야 하니까 억지로 떴는데 갑자기 고름이 터져서 고름을 닦으면서 시합을 하기도 했다.  

 

김가영은 극한의 상황에서 오히려 집중력이 더 발휘되는 것 같다. 

20년 넘게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얼마나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있었겠나. 앞선 예는 눈에 보이는 거지만,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나만 아는 일도 많다. 하지만 이런 일로 나약해지고 퍼지면 돌봐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 해결하고 이겨내야 했다. 

 

본인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3쿠션으로 전향해야 했다. 

3쿠션으로 전향해야 했던 상황은 내가 원해서 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타의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PBA라는 프로당구가 출범하면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첫 출전 요청을 했을 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 후에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감수하고라도 당구가 프로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내 힘도 보태고 싶었던 내 선택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후회는 없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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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김가영이 평생을 바쳤던 포켓볼을 떠나야 했다. 

포켓볼을 잃은 것보다 친구들을 못 만나는 게 너무 슬프다. 사실 포켓볼 대회는 나가고 싶다. 포켓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20년 넘게 같이 선수 생활을 하던 친구들을 이렇게 갑자기 못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대만에서도 오래 살았고, 미국도 일 년에 10번씩 다니던 곳인데, 이렇게 그냥 갑자기 몇 년 동안 아무 데도 못 가고 친구들도 못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만약 포켓볼 오픈 대회나 포켓볼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나 자격을 얻는다면 포켓볼도 겸해서 할 생각이 있나?

글쎄. 확답을 할 수가 없다. 상황을 봐야 하겠지만, 사실 두 종목을 같이 병행하다는 건 현실적으로 조금 불가능할 것 같다. 

포켓하고 3쿠션을 같이 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기본기랑 자세부터 또다시 다 뜯어고쳐야 한다. 그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닥치면 또 모르겠다. 진짜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사실 포켓은 그동안 여한 없이 쳤다. 성적으로는 여한이 없다. 더 이상 못 친다고 해도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 

 

3쿠션을 본격적으로 해보니 어떤가?

일단 지금은 3쿠션이 재밌다. 왜냐면, 실력이 느는 게 보이니까. 포켓볼은 느는 게 안 보인 지 오래됐다. 어느 정도 실력에 도달하고 나서는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제자리걸음이거나 늘어도 되게 더디게 느는데 3쿠션 같은 경우는 어째 됐던 뭔가 이제 계속 느는 게 눈에 보이니까 성취감도 있고 재밌다. 

 

김가영 선수는 그래도 3쿠션을 좀 친다는 얘기를 들었던 걸로 아는데?

전에도 한 25점 정도 쳤다. 근데, 동네 당구장 가면 25점 치는 분들이 한 30명은 있다. 잘 친다, 못 친다,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동네 아마추어 동호인 수준이었다. 

반면, 4구는 중학교 1학년 때 700점을 쳤다. 아버지한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워서 중학교 1학년 때 700을 쳤는데, 동네에서는 적수가 별로 없었다.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서 이제는 여자 3쿠션 챔피언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두 종목을 섭렵한 기분이 어떤가?

여자 3쿠션은 자타공인 세계 최고는 테레사 클롬펜하우어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세계 최고다’ 이런 생각은 아직 안 한다. 그냥 멋진 타이틀 하나가 더 생겼다는 것이 행복하고 좋다. 스스로 ‘고생했네, 가영이’ 이런 정도지 내가 뭐 세계 최고다 이런 건 아닌 것 같다. 

 

작년에도 LPBA 월드챔피언십 결승까지 올랐고, 준우승도 차지했다. 운만 좋았던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때는 진짜 결승전에서 너무 많이 무너졌다. 스스로 자폭을 한 수준이다. 이번에도 우승을 했다,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런 것보다 중요한 마지막 경기에서 스스로 자폭하지 않았다는 게 나에게는 무척 큰 수확이다. 

 

작년에는 왜 스스로 무너졌다고 생각하나?

부족하니까. 부담감을 이겨낼 내 자원이 부족했다. 테크닉이든, 경기 운영이든, 경험이든, 테이블 파악 능력이든 내가 갖고 있는 자원이 부족하니까 어디에서 한 구멍이 나면 메워지질 않았다. 뭐 하나가 뚫리면 그냥 거기서 무너졌다. 운이 좋아서 안 뚫리면 버티는데, 어디가 뚫리면 거기서 꼭 무너졌다. 근데 이번에는 조금 구멍이 나더라도 스스로 조금씩 메워가는 능력이 생긴 거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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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어느 정도 예전에 비한다면. 구멍이 나도 좀 메우고 메우고 하면서 어떻게든 결승전까지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번 대회도 분명히 8강에서도 위기가 있었고, 4강에서도 위기가 있었다.

차유람 선수와의 준결승전도 만족할 만한 경기를 못 했다. 사실 위기였다. 하지만 어쨌든 구멍 난 데를 뭐로 버티든 메꿔가면서 버텼던 거다. 그 부분이 사실 스스로에게 좀 칭찬을 해주고 싶다. 우승을 했다는 것보다. 

 

김가영 선수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 순간은 언제인가?

이번 대회가 그동안 우승한 대회 중 가장 큰 상금이 걸린 대회이긴 했지만 가장 기뻤던 순간은 포켓볼 선수로서 첫 우승을 했을 때다. 포켓에서는 첫 우승까지 8년이 걸렸다. 그건 어느 정도 실력을 잘 쌓아간 후에 우승을 한 거라 우승 후에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반면, 3쿠션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한 거라 막상 우승을 해놓고도 불안했다. '이게 내 것이 맞나’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고, 그 불안감이 대회 중에 여지없이 한 번씩 드러났다. 그래서 특히 결승전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포켓 때는 ‘작은마녀’로, 3쿠션에서는 ‘당구여제’로 불린다. 본인은 어떤 호칭으로 계속 불리고 싶은가?

이제는 작은마녀라고 불리기에는 키도 너무 크고, 나이도 많다. 처음 포켓볼을 시작했을 때 어려서 그런 별명이 붙었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아이가 아니다 보니 작다는 느낌과는 괴리감이 있다. 당구여제라는 칭호는 너무 감사하다. ‘제(帝)’라는 칭호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칭호가 아니잖은가. 너무 큰 영광이다. 

 

포켓볼 선수 때의 장점이 3쿠션에서도 도움이 되나?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다. 포켓에서의 장점을 3쿠션에서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접목을 못 시키고 있다. 

 

어떤 점이 도움이 되나?

포지션. 1적구 컨트롤 하는 게 분명히 도움이 될 텐데 지금은 겨를이 없다. 1적구를 컨트롤할 겨를이 없다. 내공 가는 거에 신경 쓰느라. 수구의 움직임과 수구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그거에 집중하는 것도 지금은 너무 버겁다. 수구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몸에 익으면 그때는 포지션에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포지션까지 신경 쓸 수 있는 단계가 오면 그때는 조금 더 빠르게 늘지 않을까. 

 

사람들은 지금도 김가영 선수가 포켓볼 선수라서 포지션에 능하다고 평가를 한다. 

그렇게 봐주시는 거다. 아직은 포지션에 신경을 쓰고 치는 공이 몇 개 안 된다. 그럴 거라고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이너스가 되는 점은 무엇인가?

두께를 보는 습관. 기본적으로 포켓에서 보는 두께의 기준이랑 3쿠션 선수들이 말하는 두께의 기준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포켓처럼 두께를 이해하게 된다. 포켓 선수들이 생각하는 두께가 조금 더 두껍다. 이쪽이 맞다, 저쪽이 맞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준이 다르다 보니 내가 지금은 3쿠션에 맞춰야 하는데 20년 넘게 습관적으로 가지고 있던 기준이 빨리 고쳐지지 않는다. 이게 습관이라 순간순간 툭 튀어나온다.  

 

자세에서도 포켓볼 선수들과 3쿠션 선수들이 많이 다르다. 포켓볼 선수들은 자세가 굉장히 낮은데, 3쿠션 선수들은 자세가 높다. 어떤 차이가 있나?

장단점이 있다. 거리감이나 공간적인 걸 파악할 때는 자세가 높은 게 좋고, 단순히 두께를 볼 때나 면을 볼 때는 낮은 자세가 좋다. 두 가지 자세에 대한 밸런스가 중요하다. 상황에 맞춰서 두 자세를 적절히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공에 대한 전체적인 파악이나 거리감, 궤도도 중요하고 또 면을 볼 때는 두께도 잘 봐야 하기 때문에 본인의 스타일에 맞는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아주 높은 자세도 잡아보고, 포켓처럼 낮은 자세도 잡아봤다. 지금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자세를 찾고 있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이번 LPBA 월드챔피언십 동안 도움이 된 조언이 있었나?

김라희 선수가 대충 치라고 하더라. 나는 스스로를 너무 쪼는 스타일이다. 훈련 시간도 길고 생각도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에게 주는 스트레스도 너무 많아서 그런 조언을 해준 것 같다. 

대충 쳐도 맞을 수 있는 공을 너무 집요하게 생각해서 못 맞추고 포지션도 안 되게 어려운 방식으로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생 간직할 조언은 아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도움이 됐다. 

 

평생 마음에 두는 조언이 있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 어떤 식의 노력이든 노력은 결국 결실을 보는 것 같다. 

 

3쿠션에서는 어떤 결실을 보고 싶은가?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고 싶다. 포켓으로는 한계점에 도달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뭘 더 해봤자 더 잘 치기 어려웠다. 3쿠션은 이제 시작했기 때문에 내 한계가 어디인지 거기까지 가보고 싶다. 

 

본인이 느끼기에 포켓과 3쿠션 이런 점이 다르더라 하는 점은 무엇인가?

포켓볼 선수들은 몸이 굉장히 좋다. 반면에 3쿠션 선수들은 운동선수의 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선수들이 많았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나의 가능성을 봤다. 

다른 종목의 스포츠의 경우 몸이 좋아야 성적도 좋은데 3쿠션은 그렇지 않아도 잘 치는 선수들이 많다. 그럼 그 얘기는 당구는 신체 조건과는 크게 상관없는 종목이라는 거고, 그렇다면 여자인 나도 잘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얘기다. 

3쿠션 선수가 몸컨디션까지 최상으로 만들면 경기력도 올라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포켓볼 선수들은 정말 다른 운동선수처럼 몸이 좋다. 만약 3쿠션에서 잘 치는 선수들이 몸까지 좋으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텐데 오히려 내가 체력 관리를 잘하고 3쿠션 훈련까지 더해지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바둑도 남녀의 실력 차이가 체력 차에서 나온다고 한다. 쿠드롱 같은 세계 챔피언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이번 시즌 동안 서바이벌 단계에서 한 번도 탈락을 안 했다. 프레데릭 쿠드롱조차도 서바이벌 단계가 없어져서 연승이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름의 요령을 터득한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서바이벌에서 안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한 내 나름의 방법이 있다. 그 방식대로 했더니 이번 시즌에 서바이벌을 모두 통과했다. 그 나름의 방법을 신한 알파스의 김보미 선수에게도 알려줬는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보미가 시즌 초반 서바이벌에서 자꾸 탈락하는 게 안타까웠다. 팀 리그를 같이 해보니 너무 잘 치는데, 서바이벌에서 일찍 떨어지는 게 너무 이상해서 나의 방법이 도움이 될까 해서 보미에게 얘기해 줬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그 뒤로 보미가 서바이벌 탈락을 안 하더라. 좀 뿌듯했다. 

 

김보미 선수도 이번 시즌 마지막 두 대회에서 연달아 준결승까지 올라 공동3위에 올랐다. 신한 알파스 두 여자 선수의 막판 활약이 대단했다. 

사실 지난 시즌 팀 리그에서 우리 팀에 여자 선수가 나 혼자라 내가 그 부담을 다 감당하기에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힘들었지만, 게임 수가 많았기 때문에 한 게임을 잘 못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두 번째 시즌에는 김보미 선수와 같이 해서 부담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나에게 시합을 뛸 수 있는 기회가 대회당 한 번밖에 없으니까 그걸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내 몫을 해줘야 하니까 지면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말이 나온 김에 팀 리그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이번 시즌 팀 리그 어땠나?

팀 리그 성적이 조금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더 열심히 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했다. 후회 없을 만큼. 특히 보미가 파이팅이랑 에너지가 좋아서 응원하는데 많은 의지가 됐다.

우리끼리는 사이가 너무 좋은데, 다들 내성적이다 보니 응원을 잘 못하겠더라. 그렇다 보니 팀 벤치가 너무 조용해서 사람들은 우리 사이가 안 좋고 싸운 줄 알더라. 오해다. 우리끼리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팀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너무 고생했고, 너무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다들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그래도 끝까지 잘 버텨 주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줬다. 특히 조건휘 선수가 고생이 많았다. 선배라인과 막내라인 중간에서 조율도 잘하고 팀장을 맡아서 팀을 잘 이끌어줬다. 

 

다음 시즌의 목표는 무엇인가?

타이틀로는 애초에 특별한 목표가 없었다. 솔직히 우승이야 많이 하면 좋은 거지만, 현재 바랄 수 있는 타이틀은 투어 우승이랑 시즌 랭킹 1위, 월드챔피언십 우승, 이 정도다. 그건 이제 다 이뤘다. 우승도 3번이나 했고 그중 한 번은 월드챔피언십 타이틀이다. 이번 우승으로 1위로 시즌 랭킹을 마무리했다. 

이제는 애버리지 올리는 게 목표다. 첫 시즌 때는 0.8대였고, 두 번째 시즌에는 0.9대를 쳤다. 올해는 1점대를 넘겼다. 매 시즌 0.1씩 올렸으니까 다음 시즌에는 0.2를 올려보고 싶다. 0점대로 안 떨어질 자신은 있다. 

 

김가영을 아끼는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믿고 보는 선수가 되겠다는 말을 진짜 하고 싶다. 근데 그 말을 뱉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이 된다. 그 말을 책임져야 하니까. 포켓을 칠 때는 그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자신 있으니까. 근데 지금 3쿠션 선수로서는 아직 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장담할 수가 없다. 

대신 나만의 스타일로, 다른 어떤 여자 선수들이 하지 못하는 김가영만의 스타일대로 3쿠션을 칠 수는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믿고 보는 3쿠션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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