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월, 당구선수 단체의 뿌리가 된 '한국당구인원로회' 창립

"당구선수 출신 주체성 찾고, 당구장 경영주 단체 예속된 현실 탈피" 논의

85년 프로당구 조직 목적 '대한빌리아드위원회'와 88년 선수단체 '대한당구원' 결성

초대 회장 이한종 비롯해 조성철 강두석 김영재, 김문장 등 초석 닦아

88년 월례대회서 백우종 회원이 개발한 '당구대 습기제거장치(일명 온돌당구대)' 최초 설치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월간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한국당구인원로회.  빌리어즈 자료사진
당구선수 출신 중심으로 1985년 창립한 한국당구인원로회는 경기단체 '대한당구원'과 프로당구 목적의 '대한빌리아드위원회'를 결성해 당구의 스포츠화를 주도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초대 회장 이한종, 1988년 8월에 1차 유임 후 89년 2월 중순까지 4년간 재임 

1985년 1월 10일, 서울 개봉동 영재당구장 인근의 조흥은행 지하 일식집에서 55세 이상의 당구 원로 13명이 당구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상호 간의 친화를 꾀한다는 목적으로 '한국당구인동우회'를 창립했다. 그때 참여한 멤버는 이한종, 지윤옥, 최기창, 조성철, 강두석, 김한기, 조동성, 김주린, 이의선, 최석영, 김상호, 양진섭, 김영재 등이었다. 이들 외에 준회원 자격으로 최인식, 남성우, 이강수, 임영렬, 양귀문, 김문장이 참여했다. 

1955년 11월 국회부의장 이재학이 회장을 맡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의 이사장을 역임한 이한종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고, 매월 1회씩 정기적으로 월례대회를 갖기로 했다. 그리고 그해(1985년) 12월 20일 개봉동 영재당구장에서 열린 제10회 월례대회 때 단체명을 '한국당구인원로회'로 개칭했다. 

이후 한국당구인원로회는 단체명을 '한국당구원로회'(1997년 12월), '대한당구원로회'(2005년 7월), '대한당구시니어연맹'(2018년)으로 바뀌며 2019년 12월 현재 제310회 월례대회를 개최한 장구한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나 초창기의 기록이 없고, 다 기록할 수도 없으므로 정기총회와 중요한 월례대회, 주요 행사를 몇 회에 나누어 싣기로 한다. 이 항목에서는 한국당구인원로회 창립 후 12년간의 발자취를 기록하고자 한다. 

1988년 7월 19일 서울 고척동 영재당구장(한국당구회 김영재 회장 경영)에서 개최된 제39회 월례대회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당구선수 출신 경기인의 주체성을 찾지 못하고, 당구장 경영주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산하에 예속되었던 처지를 탈피해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경기인들의 독자적인 경기단체를 결성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진 자리였다.

이날 모임에는 기존 회원 외에 새로 가입한 회원 등 25명이 참석하여 이한종 회장 사회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당구 경기인의 통합된 독자적인 경기단체를 조직하여 체육부 산하에 가입해야 한다는 제안설명을 김문장이 하고, 이에 동의한 참석 회원들은 가칭 '대한당구원' 결성을 결의했다. (「당구경기인들, 체육부 가입 목표로 한 새 경기단체 결성 선언과 '100만인 서명운동'」 참조)

1988년 8월 5일에는 제5회 임시총회 겸 야유회가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 금남리 개울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 회원은 16명, 회장 선출 및 임원 선출이 있었는데 이한종 회장이 유임되었으며 부회장에 강두석, 조동성, 김영재가 선출되었고, 김상호가 총무에 지명되었다. 한편, 앞 달에 결성을 결의한 '대한당구원'의 진로와 추진 방향이 논의되었으며 추진위원 7명을 선정했다.

1개월 후인 9월 3일 제40회 월례대회가 대전시 은행동의 시민당구장(대표 유한상)에서 열렸으며 회원 15명이 참여했다. 이날 대회에는 비경기인들로 구성된 이리원로회(회장 김영환) 회원들이 참석해 원로회 회원들과의 친목대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당구인원로회의 이리지회 설치로 이어져 다음 달 10월 30일에는 전북 이리시 신동 '까치와 엄지당구장'에서 제2회 전국원로인당구대회가 개최되었다. 

경기 결과, 1위 김한기, 2위 고백운, 3위 조성철이 차지했다. 그리고 이리원로회 소속 회원 5명이 중앙회에 정식 가입함으로써 11월 월례대회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1988년 12월 15일 서울 고척동 영재당구장에서 열린 제43회 월례대회에서는 앞으로 개최되는 월례대회와 전국대회에서는 경기 중 일체 흡연을 금지하는 결정을 했다. 

한국당구인원로회를 이끈 인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초대 회장 이한종, 김영재, 김한기, 조성철, 김상호, 강두석 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한국당구인원로회를 이끈 인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초대 회장 이한종, 김영재, 김한기, 조성철, 김상호, 강두석 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 제3대 회장 조성철, 제4대 회장 강두석, 제5대 회장 김영재로 이어져 

1989년 2월 14일 한국당구인원로회 제4회 정기총회가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의 계림식당에서 재적회원 26명 중 18명이 참석함으로써 회칙상 과반수 이상의 성원을 이루어 개최되었다. 이한종 회장은 개회사에서 45회까지 정기월례대회를 개회할 수 있게끔 노력해준 회원들에게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앞으로 원로회가 더욱 분골쇄신하여 한국 당구계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조동성 부회장이 회원들을 대표하여 이한종 회장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한 감사로 기념품을 전달했다. 

회장 선출은 회원들의 추천에 의해 김영재, 조동성, 조성철, 남성우 회원이 입후보하여 무기명으로 투표한 결과 조성철이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부회장에는 김한기, 강두석, 조동성이 만장일치로 선임되었으며, 총무 김상호와 감사 최석영은 유임되었다. 임기는 1년으로 정했다. 총회가 끝난 후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영재당구장에서 진행된 제45회 월례대회에서는 1위 백우종, 2위 김시창, 3위 남성우, 4위 조성철이 입상했다.

 1988년 7월 14일에는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의 2000당구장(대표 백우종)에서 제50회 원례대회가 열렸다. 이날 사용된 당구대에는 백우종 회원이 각고의 연구 끝에 개발해 실용신안특허를 취득한 '당구대 습기제거장치'(일명 온돌당구대)가 설치되어 가열된 석판에서 경기를 함으로써 새로운 감각을 피부로 느끼게 했을 뿐 아니라 당구장 영업의 새로운 장을 예고했다. 이날의 경기 결과는 1위 조성철, 2위 김주린, 3위 박용철 회원이 차지했다. 

1989년 7월 23일에는 한국 당구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한종 초대 회장이 서울 강남구 서울시립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은 후 3개월 여의 투병 끝에 타계했다. 향년 75세였다. 이한종은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휘문고교 재학 중 야구선수를 했고, 졸업 후에는 모교의 야구부 코치를 한 스포츠맨이다. 그는 6·25 전에 서울 중구 다동에서 신흥당구장을 개업하면서부터 당구계와 인연을 맺어 이후 여러 곳에서 당구장을 경영했다. 그의 야구에 대한 관심도 대단해 강원도 춘천에 내려가 당구장을 운영하며 대한당구협회 강원도지부장을 할 때는 춘천중학교 야구부 코치와 대한야구협회 강원도지부 전무까지 겸했다.

1955년 11월 미도파백화점 뒤의 삼화당구장에서 6·25전쟁 후의 무질서한 당구계를 바로 세우고 당구계의 앞날을 위해 당구인들이 모여 대한당구협회를 발족할 당시에 이재학 국회부의장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부회장에 방용하, 홍사철, 이사장에 이한종을 선출했다. 이때부터 그는 당구계의 공인으로서의 사명을 갖고 일했다. 1984년 3월 한국당구인원로회의 모태인 한국당구인동우회를 발기할 때부터 참여해 회장의 중책을 맡았다. 그리고 한국당구인원로회를 설립한 10개월 후인 85년 11월에는 김영재, 김문장 등과 함께 한국 당구의 프로 조직을 목적으로 한 대한빌리아드위원회를 결성, 회장직을 수행했다. 이한종에게는 일에 대한 열의와 집념 외에도 사람을 이끄는 온화한 성품이 돋보였다.

(위) 1988년 10월 30일 전북 이리에서 개최된 제2회 전국원로인당구대회에서 우승한 김한기 회원(왼쪽)이 이한종 회장(오른쪽)에게 상장과 트로피를 받고 있다.(아래) 1990년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열린 제60회 월례대회에서 강두석 회장(오른쪽줄 검정 양복)이 시상하고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위) 1988년 10월 30일 전북 이리에서 개최된 제2회 전국원로인당구대회에서 우승한 김한기 회원(왼쪽)이 이한종 회장(오른쪽)에게 상장과 트로피를 받고 있다. (아래) 1990년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열린 제60회 월례대회에서 강두석 회장(오른쪽줄 검정 양복)이 시상하고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1990년 2월 26일에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미림뷔페에서 제6차 정기총회가 개최되어 제4대 회장으로 강두석을 선출했다. 부회장에는 박영규, 김상호가 선임되었으며, 김문장이 사무국장(총무)에 임명되었다. 임기는 1년이었다. 제60회 정기월례대회가 1990년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신성당구장(대표 김시창)에서 열렸다. 국내식 1할제 경기로 A조(1000점 이상)와 B조(1000점 이하)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A조에는 11명, B조에는 7명이 참가했다. A조는 우승 김용석, 준우승 양의모, 3위 김주린, B조는 우승 강두석, 준우승 남성우, 3위 박용철이 차지했다. 이날 특기할 사실은 A조에서 우승한 김용석은 절묘한 모아치기를 구사해 2000점을 1큐와 2큐에 완성하며 참관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1991년 3월 28일에는 제7차 정기총회 및 제67회 월례대회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의 남서울당구장에서 21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제5대 회장으로는 김영재가 만장일치로 추대되었으며, 부회장에 박영규, 김상호, 총무에 신순상이 선임 되었다. 월례대회는 청룡팀(국제식 3쿠션 20점 단판승부)과 백호팀(국내식 4구 1할경기)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청룡팀은 우승 정인수, 준우승 김문장, 3위 김용석, 백호팀은 우승 김주린, 준우승 양명수, 3위 전병옥이 차지했다.

 

- ②편에 계속


<월간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