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A 출범 당시 국내 탑 클래스 선수 중 유일하게 PBA行 선택

2년 간 투어 우승 2회, 월드챔피언십 준우승 1회 등 성적 올리며 상금으로 2억 4700만원 받아

"PBA가 잘못되면 (선수 그만 두고) 평생 당구클럽이나 하면서 살자"라고 프로 이적 결심

"프로에 힘을 보태고 싶어... 더 큰 당구판 만들기 위해 PBA와 노력할 것"

지난 2019년 강동궁은 과감하게 프로당구(PBA)로 진출을 선택했다. 그는 국내 탑 클래스 선수 중 유일하게 PBA 원년에 이적한 선수다.   사진=이용휘 기자
지난 2019년 강동궁은 과감하게 프로당구(PBA)로 진출을 선택했다. 그는 국내 탑 클래스 선수 중 유일하게 PBA 원년에 이적한 선수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의 선택은 '굿 초이스'였다. PBA와 당구, 강동궁은 두 번의 시즌을 지나오면서 함께 성장하고 발전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빌리어즈=성지안 기자] 강동궁은 프로당구(PBA) 투어가 출범할 때 국내 탑클래스 선수 중에 유일하게 PBA로 넘어간 선수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PBA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강동궁은 프레데릭 쿠드롱과 함께 PBA를 프로답게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두 번의 투어 우승과 월드챔피언십 준우승. 기대했던 것만큼 프로 성적도 좋았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투어 2승을 올렸고, 2년 동안 2억 4700만원의 상금을 받아 전체 4위에 올라있다.

한국 선수의 활약이 중요했던 프로 초창기 2년 동안 강동궁의 무게와 성과는 여러모로 PBA와 당구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처음 강동궁의 선택을 두고 태극마크를 버리고 돈을 택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의견은 일정 수준의 훈련비를 보장 받고 금메달에 도전하는 아마추어 선수라면 몰라도 당구선수의 처지에 맞지 않다.

이미 당구선수들은 액수는 좀 적을지 몰라도 프로선수와 같은 수준과 패턴으로 선수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PBA처럼 투어만 없었을 뿐이지 당구선수는 프로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당구는 아마추어조차도 투어를 뛰며 수천만원을 벌어들였다. 그 때문에 실력 있는 아마추어들이 선수등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KBF(대한당구연맹)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지적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알려진 사실이지만, 강동궁은 그리 거액을 받지도 않았다. 연수입의 플러스알파 정도를 받았고, PBA와 강동궁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더 큰 당구판을 만드는 데 서로 노력한다는 것에 마음이 맞았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강동궁과 PBA는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세 번째 시즌이 문을 열면서 이러한 명제는 더욱 명확해졌다.

강동궁은 월드챔피언십 준우승에 이어 이번 시즌 개막전에서 화려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아마추어로 남아있었더라면, 2년 동안 이러한 스포트라이트와 명성, 상금수입 등 모든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먼저 PBA를 선택하고 그 결과로 지금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강동궁을 만나 지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이용휘 기자
사진=이용휘 기자

한국 선수 중에 유일하게 PBA에서 통산 2승을 거두었다. 축하한다.

고맙다. 이런 좋은 대회와 기회를 만들어 준 PBA와 스폰서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요즘 들어서 더욱 그렇지만, 당구를 치기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선수생활을 해서 20년 넘게 당구선수로 살아왔는데, 요즘처럼 당구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PBA 출범과 함께 당구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만들어졌고 내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보람이 있다.
 

PBA 출범 이후에 어떤 부분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아주 많은 게 달라졌다. 당구선수에 대한 관심과 주목도가 너무 높아졌다. 아무래도 가끔 한두 개 열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매달 새로운 대회가 열리고, TV에서 계속 당구 경기가 중계되다보니 당구 동호인 외에도 당구선수들이 많이 알려진 것 같다.

PBA 이전에는 당구클럽에 가면 많이 알아봐도 길에 돌아다니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마스크를 하는데도 길을 다니면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구가 참 많이 성장했다.
 

상금도 억대로 늘어나서 더 관심이 커졌다. 상금에 대한 선수로서의 생각은 어떤가.

그렇다. 우리가 말하던 ‘꿈의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선수로서 너무 기쁜 일이다. 아직 골프나 다른 프로 종목에 비하면 적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PBA가 출범하기 전까지만해도 당구선수가 우승상금 1억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저 꿈같은 일이었다.

PBA가 이제 출범 3년 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상금이 아니다. 가장 큰 월드챔피언십은 우승상금이 3억원이나 되고 그보다 더 상금이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아쉽게도 지난 월드챔피언십에서 3억원을 눈앞에서 놓쳤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는데.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잠이 안 온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월드챔피언십이라는 것은 의미가 큰 대회다. 과거 UMB(세계캐롬연맹)에서 활동할 때도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쳤다.

다 이긴 경기를 따라잡히고 승부치기에서 졌다. 이번 월드챔피언십도 그렇고, 상금은 둘째 치고 선수로서 최고의 승부에서 졌다는 사실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개막전에서 우승 후 세리머니 하는 강동궁.  사진=이용휘 기자
이번 개막전에서 우승 후 세리머니 하는 강동궁. 사진=이용휘 기자

다행스럽게도 이번 시즌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0-3에서 4-3으로 역전한 극적인 승리였다.

곧바로 우승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0-3으로 크게 지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경기 운도 나한테 따르지 않았고, 4세트에서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지더라도 뭔가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쳤다. 당시 공이 좀 안 맞았을 뿐이지 팔 상태는 괜찮았다. 4세트를 승리한 후에 5세트에서 14점 위기가 있었는데, 졌다는 생각이 안 들고 뭔가 나에게 기회가 올 것 같았다. 6세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역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나.

3-3을 만들고 7세트가 되면서 욕심이 생겼다. 5:5로 접전을 벌이다가 사파타에게 4점을 맞아서 5:9가 되면서 어렵나 싶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세계선수권대회와 월드챔피언십 결승이 오버랩되더라.

그때도 드라마를 만들어주고 우승컵도 내줬는데, 이번에도 똑같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경기는 끝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었다. 사파타의 10점째 샷이 빠질 곳이 없는 공이었는데 간발의 차로 빠져 버렸다. 


다음 공격에서 6점을 모두 쳐서 대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파타 공이 빗나가고 나온 포지션이 어려웠다. 첫 공에 혼신을 다해 집중했다. 길게 세워치기 외에 다른 초이스는 확률이 떨어졌다. 길게 세워치기를 쳐야 되는데 어렵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포지션이다.

심지어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다음 공이 없고, 빗나가면 수비가 안 돼서 공이 풀린다. 따라서 내가 실패하면 그냥 끝나는 상황이었다. 대신 정확하게 맞으면 뒷공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승부를 걸었다.


길게 세워치기가 정확하게 들어갔나.

완벽하게 맞았다. 그러면서 남은 5점도 포지셔닝이 풀렸다. 마지막 뒤돌려치기에서 적구가 멀리 있어서 애매할 수 있었다. 이런 공은 득점을 하는 중간이 아니라면 실패할 확률이 있다.

그런데 내가 점수를 연결해 나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팔도 풀려 있어서 과감하게 샷을 했고 득점에 성공했다. 너무 기뻤다.

강동궁 대 다비드 사파타의 이번 시즌 개막전 결승 장면.  사진=이용휘 기자
강동궁 대 다비드 사파타의 이번 시즌 개막전 결승 장면. 사진=이용휘 기자

사파타와 연이어 결승에서 만났는데.

월드챔피언십에서 패했던 다비드 사파타와 결승에서 다시 만났지만, 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괜찮았다. 사파타와는 PBA에 와서 결승에서만 3번 대결했다.

드라마 같은 승부가 나와서 재미도 있었고. 사파타와 큰 경기에서 여러 번 만나는 것 때문에 응원도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PBA에서 본 사파타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 경기를 해본 선수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그 친구가 아니더라. 사파타는 기본기가 너무 좋다. 애버리지를 보면 알겠지만, 2년 넘게 치면서 1.7대를 친다는 것은 실력이 상당한 거다.

나와 쿠드롱 같은 선수들은 애버리지가 약간 떨어졌다. 그것은 뱅크 샷 때문에 경기 운영이 전부 바뀌었기 때문이다. 


PBA에서는 뱅크 샷이 2점이기 때문에 뱅크 샷을 많이 시도한다. 본인은 어떤가.

처음에는 나도 2점 뱅크 샷 룰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통 경기할 때 뱅크 샷은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만들려고 하지도 않고 정말 칠 게 없을 경우에만 친다.

지금까지 30년 넘게 당구를 치면서 나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이러한 패턴으로 공을 쳤다. 그런데 뱅크 샷이 2점이 되면서 이게 완전히 달라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

뱅크 샷은 농구에서 3점 슛 같은 거다. 농구 3점 슛은 거리도 멀고 어렵다. 그러나 당구에서 뱅크 샷은 넣어치기와 같은 아주 쉬운 포지션들이 있다. 이 포지션을 만들거나 구석으로 공을 모아서 어렵지 않은 스리뱅크 샷을 성공시키면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게 된다.

PBA 초반에 선수들이 이런 연습을 해서 타격을 주거나 내가 잘 쳤지만 아깝게 빠졌는데 뱅크 샷 기회를 줘버려서 얻어맞으면 엄청 데미지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포지셔닝, 디펜스 등 경기 전략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것이 PBA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 중 하나인가.

PBA 경기를 보고 연맹에 있는 친한 선수들이 간혹 “왜 그런 초이스를 하냐”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와서 한 번 쳐보면 알게 된다고 말하곤 한다.

PBA 룰은 단순히 2점짜리 뱅크 샷이 생긴 것이 아니다. 경기 운영과 전략 모든 게 예전이랑 다르다. 그래서 쿠드롱 같은 선수도 어려워했다. 나도 초반에 뱅크 샷으로 타격을 계속 받으면서 상대방에게는 전혀 타격을 못 주니깐 그게 부담스러웠다.

투어 두 번째 우승 후 시상식에서 기념촬영 하는 강동궁.  사진=이용휘 기자
투어 두 번째 우승 후 시상식에서 기념촬영 하는 강동궁. 사진=이용휘 기자

뱅크 샷 때문에 10점 이상 차이가 나도 금방 잡히는 경우도 많더라.

PBA 선수들은 모두 10점 이상 장타를 칠 수 있는 선수들이다. 거기에 뱅크 샷 운영까지 하면 10점 차는 따라잡는데 순식간이다.

연맹에서 40점, 50점 단판치기를 할 때는 경기장에 입장할 때 상대를 보면 대부분 ‘못 이긴다’라고 생각하는게 느껴진다. 그런데 PBA에서는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이길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게 확연히 보인다.


초반에 첫 우승이 늦은 감이 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인가.

첫 시즌 6차전에서 우승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엄청 빨리 한 거라고 생각한다. 난 2년이 돼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예민한 스타일이라 2점제, 서바이벌 등 바뀐 룰에 적응하기 위해 생각이 많았다.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뱅크 샷을 고려한 디펜스 연습도 하고, 심지어 스트로크를 하면서 숫자를 카운트하는 템포 훈련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내 페이스가 무너졌다. 첫 우승 때는 32강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자신감이 커졌고, 그 자신감 하나로 우승한 것이다. 그 당시 내 상태는 너무 안 좋았다.


이후에 오래 입상을 하지 못하다가 월드챔피언십 준우승과 이번 개막전을 우승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나.

SK렌터카 팀에서 멘탈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과거에 내가 어떻게 쳤는지 감각을 되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원래 TV도 잘 안보는데 유튜브 경기를 다 찾아보고, 내가 한 경기 장면을 보면서까지 애를 썼다. 그런데 봐도 잘 모르겠더라. 하하
 

최근에 서바이벌이 없어지고 3전 2선승제로 예선이 치러지게 됐는데, 어떤가.

서바이벌은 나도 그렇고 어려워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물론, 잘 맞는 선수들도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4명이 치다보니깐 알게 모르게 견제를 많이 받았다. 서바이벌 통과하는게 가장 힘들었다.

이번에 서바이벌이 없어지고 3전 2선승제로 바뀌었는데, 경기가 빨리 끝나서 한순간도 방심을 할 수가 없다. 어떤 선수는 멀리서 와서 20분도 경기를 못하고 가는 경우도 생기더라. 토너먼트보다 리그전으로 바뀌어서 선수들이 경기를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이용휘 기자
사진=이용휘 기자

처음 PBA에 국내 탑클래스 선수 중에서 혼자 갔다. PBA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나는 국내 탑클래스 선수 중에서도 당구선수 생활을 가장 오래했고, 프로에 대한 열망도 컸다. 이번에는 프로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이 보였다. 돈 때문이면 프로에 안 왔다. 알다시피, 이게 잘못되면 내 당구 인생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내가 왜 모험을 하겠나.

그러나 프로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잘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게 이런 거니깐. 그 생각으로 PBA를 선택한 거다. 만약 잘못된다면 다시 연맹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깐, 평생 당구클럽이나 하면서 살자는 결심을 하고 PBA로 왔다.


선수생활 전체를 건 과감한 도전이 그래도 성공했다. 선수로서 지금은 어떤 바람이 있나.

작은 바람이 있다면, PBA 투어에 선수들이 전부 모였으면 좋겠다. 가장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투어에서 모두 힘을 모아야 경쟁력이 생기게 되고, 당구와 PBA 투어 모두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세계에서 잘 치는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으면 진짜 정글처럼 된다.

처음 PBA에 같이 희생하며 도전했던 선수들도 외면하면 안 되지만, 크게 보면 투어가 더 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선수들에게도 더 플러스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무대를 만들고 더 열심히 해서 거기서 혜택을 받도록 살아남아야 한다. 


PBA 투어에서 개인적으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달라.

지난해 팀리그가 생기고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우선 팀리그에서 소속팀 SK렌터카 위너스가 우승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더 개인적으로는 아깝게 놓친 월드챔피언십 타이틀을 따내는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PBA 투어는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투어를 만들어주신 장상진, 이희진 대표님을 비롯해 관계자분들 모두와 함께 고생해온 우리 선수들, SK렌터카 식구들 진심으로 감사한다. 더 열심히해서 당구 팬 여러분에게 멋진 경기 보여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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