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당구연맹, 2030년 도하아시안게임에 당구 정식 종목으로 채택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첫 종목 채택 후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까지 정식 종목으로 열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부터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2002년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당구 국가대표 선수단. 당시 국가대표로 출전한 황득희(아래 줄 오른쪽 두 번째), 정영화(아래 줄 왼쪽 두 번째), 김원석(아래 줄 오른쪽 첫 번째) 등이 메달을 땄다.  사진=빌리어즈 자료
2002년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당구 국가대표 선수단. 당시 국가대표로 출전한 황득희(아래 줄 오른쪽 두 번째), 정영화(아래 줄 왼쪽 두 번째), 김원석(아래 줄 오른쪽 첫 번째) 등이 메달을 땄다. 사진=빌리어즈 자료

[빌리어즈=성지안 기자] 꼬박 20년이 걸렸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던 당구가 다시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되기까지 말이다.

지난 15일 대한당구연맹(회장 박보환, KBF)은 아시아당구연맹(ACBS)으로부터 당구 종목이 '2030 도하아시안게임'에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고 전했다.

아시아당구연맹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당구 종목이 아시안게임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알릴 수 있어 굉장히 기쁘다.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되었다"고 소식을 알려왔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당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까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총 4차례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회 개최 비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종목에서 제외된 후 실내체육 종목으로 분류되어 이후부터는 실내무도아시안게임에 포함되어 개최되어 왔다.

당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한 차례 종목 탈락의 위기를 겪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당구가 종목 탈락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한 당구계에서는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한쪽에서는 당구 종목 채택 서명운동을 펼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요 인사들을 만나 설득하는 등 많은 당구계 인사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정식 종목에 이름을 올려 황득희가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좌) 폴 9볼 복식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정영화(오른쪽)과 김원석이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우) 시상대에 오른 캐롬 3쿠션의 메달리스트들 (왼쪽부터) 은메달 이상천, 금메달 황득희, 동메달 시마다 아키오(일본).  사진=빌리어즈 자료
(좌) 폴 9볼 복식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정영화(오른쪽)과 김원석이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우) 시상대에 오른 캐롬 3쿠션의 메달리스트들 (왼쪽부터) 은메달 이상천, 금메달 황득희, 동메달 시마다 아키오(일본). 사진=빌리어즈 자료

포켓볼 국가대표를 선발하고도 행정 미숙으로 3쿠션 한 종목만 출전했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김무순과 김정규가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김정규가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3쿠션의 황득희와 이상천이 결승에 진출해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포켓볼 부문에서는 정영화가 개인전 동메달을, 포켓9볼 단체전에서는 정영화-김원석이 은메달을 차지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포켓볼 부문 김가영이 은메달을, 3쿠션 부문 김경률이 동메달을 따냈으며,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포켓볼의 김가영이 또다시 은메달을, 정영화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20년 만에 아시안게임에 당구 종목이 채택된 소식을 전한 대한당구연맹의 박보환 회장은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축제에 20년 만에 당구가 다시 포함된 것은 새로운 도약의 큰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연맹은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