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칼럼] ‘당구한류’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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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칼럼] ‘당구한류’를 찾는 사람들
  • 김주석 기자
  • 승인 2020.07.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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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웃 3쿠션 고안한 인천당구연맹 김태석 회장 '당구 한류' 처음 주장
한국 당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세계 당구의 중심을 한국으로 재편하려는 시도
물리적 시간으로 앞선 유럽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현실 인식 필요

‘당구한류’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2014년 무렵이었습니다. 단어 자체가 상당히 생소했습니다. 당구의 태생 자체가 한국과는 꽤 거리가 있었고, 우리가 당구를 받아들인 것도 19세기 후반 개항 이후였기 때문에 14세기 정도로 보는 현대식 당구의 기원이나 우리보다 100년 넘게 앞선 유럽의 스포츠 당구를 한국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생각은 사실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K팝이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한류’라는 단어 자체에 아무리 힘이 실려도 당구와 한류를 연결시키는 고리를 찾는다는 발상이 평범하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당구계에 오래 있다 보니 저도 사고가 고착되어 있었던 것인지, ‘당구한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썩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당구계에서 그런 시도나 개념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미국 BCA나 광저우 엑스포 같은 곳에 가끔 국산 제품의 홍보를 위해 참가하는 당구인이 있거나, 김경률과 최성원 같은 선수 또는 조금 더 멀리는 이상천 회장님 같은 분이 세계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한국을 세계 당구계에 알린다는 정도로 의식할 뿐 전 세계 당구계에 한류를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은 들어본 적도 없고, 미처 그런 생각이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4년 무렵에 만난 어떤 분에게 느닷없이 ‘당구한류’라는 단어와 “당구를 한국 중심으로 재편해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그저 좀 낯설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분은 레이아웃 3쿠션을 고안하고 이를 중심으로 캐롬 종목에서 골프와 같은 변화를 주장한 인천당구연맹 김태석 회장님입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이분은 당구계에 처음 ‘당구한류’라는 단어를 끄집어낸 사람입니다. 그 뒤로 간혹 이야기를 나누면서 왜 당구한류가 필연적이고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들었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아졌습니다. 한국 당구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뭉쳐서 세계 당구계의 중심을 한국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는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일이 분명합니다. 유럽은 스포츠나 산업이나 대부분 오랜 전통과 기술을 갖고 있고, 그보다 수백 년 뒤에 눈을 뜬 한국이 종주대륙인 유럽의 시간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가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 유럽에서는 디젤 기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우리가 강세인 캐롬 3쿠션 종목만 해도 최소 100년은 더 먼저 유럽이 만들고 즐기던 스포츠입니다. 우리가 당구의 ‘당’자도 알 수 없었던 때부터 유럽에서는 국제식대대라 불리는 3쿠션 종목의 용품을 만들고, 선수들을 배출하고 경쟁을 하는 스포츠와 산업의 완벽한 구도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3쿠션 국제식대대를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기 위해 시도하신 분은 허리우드 당구대의 창업주이신 고 홍영선 회장님입니다. 홍 회장님은 90년대 초반에 한국의 대표급 선수 2명을 유럽의 한 당구대 공장으로 보냈습니다. 국제식대대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견학을 하며 거기서 보고 배운 것을 스케치해 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유럽과 한국의 당구산업은 차이가 컸고, 국제식대대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한국은 걸음마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당구를 가장 잘 아는 선수 2명을 유럽에 보내서 보고 들었던 것을 토대로 한국에서도 국제식대대라 할 만한 당구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불과 9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18세기 후반부터 기술을 개발했던 유럽과 한국 당구산업의 거리는 거의 200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이 정도의 거리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두 번은 넘을 수 있어도 ‘한류’라는 바람이 불 정도로 지배할 만한 구도를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종목 자체의 변화를 주고 기준을 바꾸려는 시도가 우선되지 않으면 다음, 그다음 세대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불과합니다.

스누커를 예를 들면 이해가 좀 될 것입니다. 중국은 종주국 영국보다 더 큰 산업과 인프라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도 우리처럼 후발주자에 불과합니다. 딩준후이 같은 세계챔피언이 한 명 있을 뿐이지 스누커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지는 못합니다. 경제적인 논리와 숫자에만 부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차이나풀’이라는 변종을 만들어 냈습니다. 중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고 주최국의 선택으로 만약 당구가 올림픽에 입성하는 날이 온다면, 당구를 대신해서 차이나풀 종목만 채택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요즘 ‘당구한류’를 외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한국 중심으로 당구를 재편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지금 가장 대표적으로 PBA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지난해 PBA는 첫 시즌을 운영하면서 약 40억원 가량의 적자를 보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당구한류’만 될 수 있다면, 이 정도 투자는 결코 많은 금액은 아닙니다.

PBA가 5년 정도의 투자를 예상하고 당구계에 들어왔기 때문에 대략 200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말했던 대로 200년을 뒤져 있는 우리가 ‘당구한류’라는 원대한 목표를 5년 안에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국내 당구만 전체 시장이 연간 2조원을 넘습니다. 세계 당구계 규모는 얼마나 더 클까요. 200년이나 뒤져 있었던 전 세계를 한국이 천하통일하려면 얼마나 많은 숫자가 필요한 것일까요.

‘당구한류’에 도전하는 방향 설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한국 당구를 통합하고, 수치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그림으로 최종적으로 전 세계에 당구한류의 바람을 일으킬 것인지, 깊게 고민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도 유행인지, 세계 중심을 한국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당구한류’를 주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당구장이 세계에서 제일 많고, UMB까지 전부 먹여 살리고 있으니깐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캐롬 종목의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이내의 일입니다. 한국 당구의 대표 격으로 발전하고 있는 PBA는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100년, 200년의 전통과 기술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과연 우리가 충분한 것인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현실을 인식하면, 분명 더 좋은 해결책이 나올 것입니다. 비정하리만큼 야멸찬 숫자의 간극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계획을 수정해서 중국의 차이니즈풀과 같은 새로운 전략적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상보다는 직시가 우선되어야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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