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빌리어디스트] 가치 증명, 프로 당구선수 신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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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빌리어디스트] 가치 증명, 프로 당구선수 신정주
  • 김민영 기자
  • 승인 2020.06.18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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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뜨거운 관심 속에 시작된 3쿠션 프로 투어가 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서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관중도 없이 열리는 외로운 투어로 시작하지만 관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지난해 나온 일곱 명의 챔피언들이 과연 이번 시즌에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줄지, 혹은 어떤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할지 128명의 프로 당구선수들의 화려한 대결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비단 당구팬들뿐 아니라 직접 경기를 치를 선수들 역시 개막전을 한 달여 남겨둔 이즈음 많은 각오를 다지고 있을 터.  

그리스의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의 1차 대회 우승 이후 한국 선수로는 첫 우승을 차지한 신정주(신한금융투자) 역시 두 번째 프로 투어를 앞두고 기본기를 점검하며 이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무명에 가까운 어린 선수에서 단숨에 챔피언이 되어 버린 신정주를 두 번째 프로 투어 시즌을 앞두고 <빌리어즈>가 만났다. 
 

 

- 예기치 못한 전 세계적인 위기로 예정되어 있던 대회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두 번째 시즌도 예상보다 늦게 시작되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었나? 

집이 부산이라 부산에서 꾸준히 연습하면서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 투어 준비는 많이 했나?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나? 

열심히 준비했다. PBA에 새로운 2점제 룰이 도입되면서 2점짜리 공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원래 내가 한 번에 2점을 획득할 수 있는 빈쿠션치기에 약한 편이라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연습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시합을 하다 보면 쉬운 공을 적게 실수하는 사람이 승리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쉬운 공, 기본적인 공 위주로 연습을 하고 있다.   

 

 - 지난해 프로 당구 투어 첫 시즌 두 번째 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빨리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나? 

나도 이렇게 빨리 우승을 할지 몰랐다. 그동안 연맹 소속 선수로 있으면서 성적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서 프로 투어를 시작할 때 평균만 하자는 각오로 시작을 했다.  

 

-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신정주’라는 선수를 기대주로 기억하고 있다. 세계주니어대회 입상 경력도 있지 않은가?  

총 세 번의 세계주니어대회에 출전을 했는데, 그중에 첫 번째 출전한 구리에서 열렸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공동3위를 했고, 두 번째 출전한 후르가다에서 열렸던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 그럼 세 번째는 우승 아닌가?  

아쉽게도 세 번째 대회에서는 초반에 탈락했다. 스페인에서 열렸던 대회였는데, 마지막 출전하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라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감기몸살이 심하게 걸려서 이틀을 누워 있다가 시합에 나갔다.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게임이 너무 안 되더라. 결국 바로 지고 말았다. 마지막 주니어대회를 그렇게 마무리해서 너무 아쉬웠다.  
 

- 성인이 된 후 성인 무대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성적이 쉽게 나지 않더라. 그동안 연맹대회에서는 본선 진출 한 번이 내 최고 성적이었다. 32강까지는 올라가는데, 그 32강에서만 열 번 넘게 떨어졌다.

그 시간이 길어지니까 트라우마처럼 징크스가 됐다. 특히 점수 차이가 많이 난 상태로 지는 것도 아니고 1, 2점 차이로 진 시합이 많다 보니 극복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 그랬는데, PBA로 이적하자마자 두 번째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것도 한국 선수로서 첫 프로 투어 우승이었다. 본인도 놀랐을 것 같은데.  

정말 우승까지 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예선전인 서바이벌부터 죽다 살아났다. 프레데릭 쿠드롱 선수랑 예선 2차전 서바이벌에서 만났는데, 전반전에서 계속 1등을 하다가 후반전에서 한 번에 19점을 맞고 정신을 못 차렸다.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1점 차이로 겨우 다음 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다음 32강 경기도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났고, 그다음 16강 경기부터 좀 잘 풀렸던 것 같다.

16강에서 오성욱 형을 만났는데, 웬일인지 경기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풀렸다. 그다음 8강에서 필리포스 선수랑 만났는데 이 게임이 진짜 부담이 많이 됐다. 

 

- 이전 대회 우승자라서? 

물론 그런 부담감도 있었지만, 주위에서 이번에는 한국 선수가 우승했으면 하고 많이 바라고 있었다. 그때 8강에 오른 사람들을 봤을 때 내가 봐도 필리포스가 또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아 보였다.

그런데 하필 필리포스랑 붙게 되었으니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꼭 이겨달라는 소리를 한 100번은 들은 것 같다.

너무 부담이 컸는데, 막상 시합에 들어가보니 생각하는 대로 공이 너무 잘 맞아서 경기가 쉽게 풀렸다.  

 

- 우승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경기는 어떤 경기였나? 

4강이 가장 힘들었다. 신남호 선배와의 준결승 경기였는데, 솔직히 2세트를 먼저 내리 이기고 좀 안도를 했었다. 이대로면 금방 경기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열심히 쳤고, 3세트도 13:9로 내가 2점이 남고, 신남호 선배는 6점이 남은 상황이었다.

3세트를 끝낼 생각으로 빈쿠션을 시도했는데 진짜 아슬아슬하게 공이 살짝 빠졌다. 그거 빠지자마자 신남호 선배가 6점을 전부 쳐서 게임을 끝냈다.

그다음부터 신남호 선배가 너무 잘 치셔서 속으로는 ‘졌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5세트도 0:7로 시작해서 힘들겠구나 싶었다. 

 

 

- 보통 5세트 경기에서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2-2로 따라 집히면 이기고 있다가 따라 잡힌 선수가 진다는 PBA 속설이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기고 있다가 2-2로 따라 잡히면 이기고 있었던 선수가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면에 상대방 선수는 칼이 살아나고 있어서 웬만하면 그대로 역전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마지막에 공이 잘 따라줘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 결승전은 준결승에 비하면 큰 어려움 없이 경기를 풀어간 것 같은데? 

결승전도 1, 2세트를 연달아 이기긴 했는데, 솔직히 그때는 몸이 너무 힘들었다. 일주일 동안 호텔에서 시합을 했는데, 정작 잠은 근처 모텔을 잡고 밖에서 잤다.

떨어지면 부산으로 바로 내려가야 하니까 매일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다 싸 들고 경기장에 가서 시합 끝날 때까지 계속 대기하고 있다가 이기면 다시 모텔을 잡고 들어갔는데, 그 지역 모텔은 대실비가 따로 있어서 밤 9시가 되야 입실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경기가 일찍 끝나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 생활을 일주일 동안 했다. 게다가 결승전 당일에는 밤 11시가 넘어서 시합을 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였다. 

 

- 조건휘 선수와의 결승전도 경기 내용으로 보면 엄청 치열했다. 3세트에서 조건휘 선수가 5점을  몰아치며 역전승으로 세트를 가져가더니 4세트도 14:13으로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4세트와 5세트를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 우승하자마자 누가 제일 먼저 떠올랐나? 

부모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당구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떻게? 

중2였던 15살 때 처음 당구장에 데려간 분이 아버지셨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신데 당구를 엄청 좋아하셨다.

특별한 특기가 없던 나에게 당구를 한번 배워보라고 하셨고, 최영운 프로가 계신 클럽에 다니면서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 11년 전이면 학생들이 당구장에 다니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을 거 같은데 당구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은 없었나? 

당구를 잘 몰라서 선입견이랄 것도 없었다. 어른들 사이에 학생은 나 혼자라 분위기 적응이 좀 힘들었다. 겁도 많고 내성적인 데다가 당구장에서 담배도 피우고 어른들만 있어서 무척 낯설고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 다니다 보니 다들 잘 해주셔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당구선수로 활동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일반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다행히도 당구부가 생긴 다른 학교에서 특기생으로 대회나 훈련 시간을 배려해 주겠다고 해서 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덕분에 훈련 시간도 확보하고 대회도 나갈 수 있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은? 

처음에는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주변에 선배들을 보니까 대학교를 간 이유를 모르겠더라. 차라리 대학교에 안 가고 그 시간에 좀 더 당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 PBA라는 프로 투어가 생기고 이적에 대한 망설임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연맹에 남아봤자 득이 될 일이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 싶었다. 만약에 안 되더라도 징계를 먹고 그 후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 프로 전향 후 주위 반응은 어땠나? 

친구들이 내가 당구를 치고, 당구선수인 건 아는데 솔직히 방송이나 미디어에 노출이 거의 안 돼서 내가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어떤 경기를 하는지, 당구 시합은 어떤 건지 잘 몰랐다.

그런데 프로 투어가 생기면서 방송에도 많이 나오고 유튜브에도 경기가 나오니까 친구들이 거의 모든 경기를 다 찾아보고 응원해주고 있다.  
 

- 올 시즌 기대하는 성적은? 

작년에 좋은 성적을 내서 좀 부담스러운데 올해도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싶다. 일단 목표는 파이널이다.  

 

- PBA 투어는 서바이벌과 세트제 경기를 하는데, 자신 있는 경기 방식은? 

세트제 경기에 강한 것 같다. 서바이벌은 초가 짧으니까 그거에 대한 신경이 많이 쓰인다. 게다가 일대일 경기가 아니라 수비나 경기 운영 면에서 흔들릴 때가 많이 있다.  

 

- 주니어 선수부터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 당구선수 하나만 목표로 그동안 살아왔다. 신정주에게 당구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느덧 당구선수로 11년 차다. 당구선수에게는 꾸준함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학생선수였을 때도 그렇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렇고, 또래 중에 당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도전한 사람들은 많은데 남아 있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결국 꾸준함인 것 같다.

꾸준하게 하다 보면 꼭 좋은 성적이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32강 트라우마에 빠져서 당구를 그만뒀다면 프로 투어 우승은 꿈도 못 꿨을 거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  

 

- 당구선수 중에 좋아하는 선수가 있나? 

최성원 선수. 형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같은 부산 출신이라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았고. 다른 형들도 많이 도와주셨지만, 성원이 형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전히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신정주 선수는 어떤 당구선수가 되고 싶은가? 

모든 스포츠를 보면 종목마다 딱 떠오르는 대표 선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당구’ 하면 ‘신정주’ 이렇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마지막으로 PBA 프로 투어가 신정주에게는 큰 기회가 됐는데, 프로 투어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우선 나에게 엄청 좋은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맙다. 신한금융투자라는 소속도 갖게 되었고, 올해는 개인전뿐 아니라 팀 리그도 뛸 수 있게 되었다. PBA가 더욱 커져서 당구선수들이 당구만 쳐도 먹고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인터뷰·글=김민영 기자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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