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F의 권리는 집행부가 넘겨주고, 책임은 선수가 지라는 것"

PBA로 선수 유출 후 KBF는 지자체 지원 국내대회 사업 추진도 어려워져

국내랭킹은 UMB 세계랭킹 산정에 영향 미쳐... UMB와 분쟁 및 페널티 고려 안 한 계획

KBF 국내대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생활체육대회가 되어 국가의 기본 스포츠 육성 체계 위협

KBF-PBA 상생협약 세부안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점을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선수위원회가 제기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KBF-PBA 상생협약 세부안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선수위원회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빌리어즈=김주석 기자]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KBF)과 프로당구협회(PBA)가 추진해온 상생협약의 윤곽이 드러났다. KBF는 지난 4월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상생협약 추진 방향이 담긴 세부안을 의결했다. 이날 이사회에서 공개된 상생협약 세부안을 두고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유는, 그간 선수위원회가 우려를 나타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겼기 때문.

KBF 선수위는 상생협약 세부안 중 선수교류 방안은 “KBF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했고, 이를 접한 다수의 당구 관계자도 “KBF의 권한 축소가 필연적”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양 단체 선수가 원하는 대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문제가 있나”라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세계캐롬연맹(UMB)의 제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외부단체와의 선수교류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당사자인 선수들은 ‘선 UMB 문제해결, 후 교류’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KBF가 이사회를 통과시킨 상생협약 세부안 중 논란이 되고 있는 선수교류 방안.  빌리어즈 자료사진
KBF가 이사회를 통과시킨 상생협약 세부안 중 논란이 되고 있는 선수 교류 방안. 빌리어즈 자료사진


 ‘UMB 아니면 PBA’ 선택 아닌 사실상 방조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상생협약 자체는 KBF-PBA 양 단체가 선수를 교류하면서 자유롭게 아무 대회나 출전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계획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생협약의 당사자인 선수들의 의견은 다르다. UMB 문제를 남겨두고 KBF와 PBA가 무리하게 상생을 강행하는 바람에 책임과 피해는 모두 선수들이 감당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앞서 KBF 선수위는 상생협약 세부안이 알려지고, 선수교차 등록 방안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선수위가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KBF 우수선수의 PBA 이탈과 그에 대한 UMB의 징계 등의 책임이 모두 선수의 몫이라는 부분이다. 세부안에 ‘선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방조’라는 주장이다.

UMB 규정 상 외부 단체와의 선수교류나 교차출전은 선수 당사자가 징계를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선수가 직접 피해를 당하는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서 무작정 선수 교류부터 하겠다는 것은 KBF 집행부가 선수들에게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를 전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선수들은 “UMB의 불이익을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선수들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KBF 집행부가 상생 세부안에서 ‘선수들 스스로 선택하라’는 것은 당구선수의 신분을 보장하고 최우수 선수를 국가대표로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체육진흥기금에서 연간 몇십억의 지원을 받는 KBF가 국가 산하 당구 스포츠단체임을 망각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선수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2020년에만 한시적 교차등록 허용

상생협약에서 선수를 교류하는 구체적인 방안의 기준은 2020년에만 한시적으로 교차등록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2021년부터는 교차등록이 안 되고, 등록된 단체의 대회만 참가할 수 있다. 이 또한, 선수들이 알아서 양쪽 단체를 선택하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선수들은 이 계획에 대해 “KBF 존립 자체에 문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생협약 세부안에 따르면, PBA의 엔트리는 1부 128명과 2부 128명 등 총 256명이고, KBF 선수는 매년 국내랭킹 10위 이내 선수가 우선시드를 받게 된다. 프로 무대인 PBA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국내랭킹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은 KBF에서 국내랭킹을 쌓아 매년 10명씩 PBA로 빠져나가게 된다. 우승상금 1억원이 걸린 프로무대로 진출한 선수가 아마추어 단체로 떨어진 KBF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다. 교차등록도 안 되기 때문에 KBF는 매년 10명씩 선수를 잃게 되는 꼴이다.

PBA 엔트리 256명이 실력 순으로 정렬이 되면, KBF에는 결국 3부 이후 선수들이 남게 된다는 얘기다. 물론, UMB 규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KBF에 남는 우수 선수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PBA로 여러 우수선수들까지 빠져나가게 되면, 선수가 자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KBF는 후원사 모집이 점점 더 어려워져 사업 확장은커녕 유지의 동력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KBF를 끌고 가는 국내사업인 지자체 대회를 유치하는 것조차 어려워져 KBF는 존립이 위협 받는다는 얘기다.

“2020년에만 한시적 교차등록을 허용하는 것은 A클래스 선수들만 사기업이 운영하는 PBA에 2020년 안에 모두 넘겨주게 되면서 사기업 브라보앤뉴(5년 내 상장 목표)가 한국 당구시장을 독식하게 특혜를 주는 것이며, 이로 인해서 KBF는 체재와 존립 자체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KBF 선수만 랭킹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상생협약 세부안에는 KBF 대회 참가자격과 랭킹포인트를 KBF에 등록한 전문선수로 한정하도록 되어 있다. PBA 선수의 경우, 2020년에는 KBF 대회에 참가해도 랭킹포인트를 받을 수 없고 2021년 이후에는 KBF 대회 출전이 아예 불가능하다. 여자는 KBF와 LPBA 모두 참가할 수 있도록 모두 오픈대회로 치르지만, KBF 등록전문선수만 랭킹포인트를 가져갈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KBF가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국내랭킹 산정에 구멍이 생긴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내랭킹 1위에게 주어지는 UMB 세계랭킹 점수 30점은 PBA로 진출한 선수들은 받을 수 없게 되어 UMB와 PBA는 갈등이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원칙적으로 국내랭킹은 UMB 세계랭킹 산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PBA로 선수를 잃은 KBF는 2부, 3부 선수들에게 세계랭킹 30점을 줄 수밖에 없고, UMB는 이를 근거로 한국에 페널티를 줄 수도 있다.

오픈대회로 치러지는 여자부는 더 문제가 크다. 대다수 관계자들은 KBF는 사실상 LPBA에 대부분 선수를 내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아예 국내랭킹 작성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UMB가 아무리 국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해도,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불이익은 한국 당구계와 선수들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국가대표를 명분으로 국가지원금을 받는 KBF의 국가대표 파견 사업에도 영향을 미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닌 당구는 국내 체육계에서도 문제가 될 우려가 있다.

“국내랭킹 점수를 줄 수 없는 KBF 대회는 주최 목적에 어긋난 대회로 변질될 것이고, 대한체육회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PBA는 성황, KBF는 몰락하는 상생 세부안

PBA는 우수선수가 더 많아질수록 지금까지 KBF가 받아왔던 당구선수를 타이틀로 받는 기업 후원을 독식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KBF는 정관 제2조 2항에 따라 ‘당구 종목을 대표하고 국제경기연맹 등 국제체육기구에 대하여 독점적 교섭권을 갖는 유일한 국내 단체’라는 단체의 존립 목적까지도 문제가 된다. ‘독점적 교섭권’이라는 것은 한국 당구 국가대표의 관리감독을 포함하는 중요한 권리다. 그런데 상생협약 이후 KBF가 이 권리를 지금처럼 오롯이 사용할 수 있을 지는 여러모로 어려워 보인다.

당장 IOC 산하의 UMB가 제재를 풀어주지 않으면, PBA로 진출한 선수는 세계선수권이나 국제종합경기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없다. 상생협약 세부안에서 KBF는 UMB 정관 제123조 4항을 근거로 “KBF-PBA 문제는 국내 이벤트이기 때문에 UMB 제재 범위를 확대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얘기다. PBA 투어는 국내에서 열리기는 해도 엄연히 UMB 규정에 충돌하는 세계대회이기 때문이다.

만약 UMB가 세계랭킹이나 국제대회 국가대표 파견 문제에서 KBF가 외부단체에 선수를 넘겨주고 IOC 산하 단체인 UMB 사업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는 사유로 국가 페널티를 주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KBF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실업연맹을 창설하고 실업을 구성하겠다고 나섰지만, 선수들은 이러한 KBF 현 집행부의 방향은 엄연히 정관 제2조 2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 2부 선수를 PBA에 내준 이후 3부 선수들로 구성된 실업팀을 얼마나 더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국체전 메달을 목표로 연간 지원금을 받는 실업팀이나 직장인경기운동부 선수가 아닌 프로 선수가 출전하는 것은 규정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실업연맹은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없다. 한 당구 관계자는 “지금 1, 2부 선수가 다 있어도 실업팀 구성이 어려운데, 우수선수들을 PBA에 다 내주고 난 다음에 실업팀 유지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준국가기관 KBF는 256명의 1, 2부 선수를 잃게 되면서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유사단체 PBA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해 투명한 스포츠 육성 및 관리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또한, 스포츠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서 지원하는 당구대회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생활체육대회가 되어 국가의 기본 스포츠 육성 체계를 위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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