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준 "당구는 낚시와 같다. 흐름 오는 순간 잘 잡아야 한다"
세트제 경기는 집중력이 관건... 상대 기(氣)에 밀리지 않아야
당구를 혹독하게 치는 편, "그 덕분에 집중력이 좋아졌다"
4차전에서는 쿠드롱과 경기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

프로당구 PBA 투어에 도전해 우승상금 1억원의 3번째 주인공이 된 최원준(41)은 20대 전부와 30대의 절반을 당구선수로 살아온 '베테랑 당구선수'다.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프로당구 PBA 투어에 도전해 우승상금 1억원의 3번째 주인공이 된 최원준(41)은 20대 전부와 30대의 절반을 당구선수로 살아온 '베테랑 당구선수'다.  사진=이용휘 기자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프로당구 PBA 투어 3차전에서 우승한 최원준(41)은 20년을 당구선수로 활동한 베테랑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던 지난 96년에 '최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전북당구연맹에 처음 선수등록을 했다.

20대 시절의 전부와 30대의 절반을 당구선수라는 타이틀로 살아온 최원준은 지난 2013년 결혼과 함께 생계를 책임져야 할 한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당구선수의 길을 잠시 접어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했던 그는 한동안 아마추어 동호인으로 활동하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등 전국당구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올해 전격 출범한 프로당구 PBA 투어는 최원준에게 마지막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내 인생에 마지막 기회다'

PBA로 복귀를 결심한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응원 속에 트라이아웃 1부 선수 선발전에 도전했고, 지난 4월 27일 열린 2차 트라이아웃에서 당당하게 종합순위 1위로 1부 투어 티켓을 따내면서 대장정에 오를 수 있었다. 6월 개막전에서 최원준은 32강 관문을 넘지 못했다. 한국의 고상운과 이국성, 터키의 아드난 윅셀 같은 강호들과의 경쟁에서 4위에 머물며 64강에서 탈락했다.

지난 2013년 결혼과 동시에 선수 생활을 잠시 미뤄두고 생계에 전념했던 최원준은 지난해 PBA 투어 출범 소식이 들리면서 주위의 응원에 힘입어 복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지난 2013년 결혼과 동시에 선수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생계에 전념했던 최원준은 지난해 PBA 투어 출범 소식이 들리면서 주위의 응원에 힘입어 복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이어서 7월에 열린 2차전. 최원준은 128강과 64강 서바이벌을 통과하고 당당히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아쉽게도 32강전에서 스페인의 하비에르 팔라존에게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해 탈락했지만, 한걸음 전진했다는 데 만족했다. 그리고 8월로 이어진 3차전에서 그는 드디어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높이 날아올랐다.

결승전이 끝나고 챔피언에 오른 흥분이 채 가라앉기 전, 대회장 1층에 마련된 인터뷰룸에서 최원준을 만났다. 인터뷰룸에 들어선 그는 환하게 웃으며 기자들을 반겼다. 마이크 앞에 선 최원준은 경기에 집중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프로였고, 베테랑이었다. 말도 잘하고 침착했으며, 여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터뷰에서 최원준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무명 당구선수로 살아온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최원준은 그 시간을 위해 20년을 참고 견뎠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인터뷰룸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최원준.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인터뷰룸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최원준.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우승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경기가 끝났는데,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 내가 1등을 할 자격이 있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마지막 샷이 들어갔을 때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더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1억원 우승 상금은 어디에 쓸 계획인가.

잘 알겠지만, 당구선수들이 생활고가 심하다. 상금으로는 우선 대출금부터 갚고, 아내하고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는 데 쓰고 싶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사줄 수 있고, 좋은 곳에 데리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다. 
 

'최경영'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서 최원준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당구 팬들도 있을 것 같다. 

올해 초에 개명을 했다. 96년부터 전북에서 최경영이라는 이름으로 당구 선수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당구를 좋아했다. 당구로 꼭 1등이 하고 싶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당구선수가 됐다.

선수 시절에 청주 오픈 준우승, 광주 오픈 우승 등 나름 당구선수로 경력을 쌓았는데, 2013년에 결혼을 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 이후에는 선수를 그만두고 아마추어로 동호인 대회에 나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원준이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원준이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그럼 당구선수로는 언제 다시 복귀한 건가.

PBA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작년에 당구선수 복귀를 결심했다. 주위에서도 무조건 나가라고 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다시 당구선수로 돌아왔다. 
 

PBA 출전을 결심하고 우승도 기대했나.

전혀 못 했다. PBA에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외국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경제적인 상황이 세계대회를 자비로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외국 선수들은 어떻게 공을 치는지 볼 수도, 또 같이 겨뤄볼 기회도 없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고, 또 함께 쳐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렇게 경험이 쌓으면 지금보다 더 잘 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PBA에 출전하게 됐다.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PBA의 세트제 경기 방식이 아주 잘 치는 선수뿐만 아니라 나 같은 무명 선수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 같다. 40점 경기가 아닌 세트제는 반전이 많이 연출된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 대회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이영훈 선수와의 32강이었다. 이영훈 선수가 어린 선수라 큐의 감각이 많이 살아 있어서 상대하기 좀 벅찼다. 게다가 내 게임이 너무 안 풀려서 그 게임이 가장 힘들었다. 오히려 16강전에서 신정주 선수하고 칠 때보다 더 힘들었다. 

결승전 승리 후 우승 당구대에 '챔피언 사인'을 하는 최원준.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결승전 승리 후 우승 당구대에 '챔피언 사인'을 하는 최원준.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지난 2차 대회에서는 20대 선수들이 강세를 보였다. 40대 선수로서 선배 선수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구력은 의미가 없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게 중요하다. 40대가 되고 나서 그게 쉬워졌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엄청 열심히 노력했던 것처럼 상대방도 엄청나게 노력했을 거라는 걸 인정하고, 상대방이 못 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해 쳐야겠다는 마음가짐 말이다. 나도 40대가 되고 나니 상대방을 인정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게 좀 쉬워진 것 같다. 
 

세트제 경기 덕분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세트제 경기를 잘하려면 어떤 점이 중요한가.

세트스코어에 연연하면 안 된다. 나는 항상 이 한 세트를 한 큐로 끝낸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 비록 실력에서 밀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하고, 상대방의 기(氣)에 밀리지 말아야 한다. 그게 상대방을 압박하는 포인트가 된다. 내가 이번 대회에서 위기의 순간에도 계속 이길 수 있었던 원천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기(氣)'라고 생각하다. 
 

결승전에서 먼저 3세트를 따내고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6세트까지 갔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1세트를 이기고 나서 2세트 때가 가장 힘들었다. 1세트를 이기고 나니까 '꼭 이겨야 한다'라는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이 나를 많이 흔들리게 했다. 득점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적으로 많이 흔들렸다. 그게 너무 싫었다. 

시상식에서 준우승자 정경섭이 최원준의 우승을 웃으면서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시상식에서 준우승자 정경섭(오른쪽)이 최원준의 우승을 웃으면서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김용근/PBA 프로당구협회

우승까지 2점만 남겨둔 5세트에서 13:12로 추격을 당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다음 세트에 내가 이기면 되지 그런 마음이었다. 5세트를 진다 하더라도 '6세트에 내가 초구니까 한 큐에 다 끝내야겠다', '초구에 7~8점을 쳐서 일단 기세를 눌러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번 대회 동안 몰아치기로 많은 점수를 냈다. 비결이 있나.

집중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당구를 치면서 기술적인 부분이나 모든 걸 다 떠나서 지금까지 버텨온 이유가 어렸을 때 당구를 너무 혹독하게 쳐서 그게 지금까지 나를 잡아준 원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그 혹독한 훈련 덕분에 순간 집중력이 좋아졌다. 한 점, 한 점 득점을 할 때마다 거기에 빠져들어서 몇 점을 쳤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서도 그런 집중력을 좀 높이 사는 것 같다. 

특히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집중력과 마음이다. 상대 선수가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그 기에 눌려 실수를 하게 된다. 당구는 낚시와 같다. 기다리다 보면 나에게 흐름이 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딱 잡아야 한다. 
 

선호하는 샷이 있다면.

팔의 힘을 빼고 큐의 무게로 치는 것에 자신이 있다. 악력을 안 쓰고 큐의 무게를 최대한 이용해서 치면 부드러운 샷을 구사할 수 있다. 힘 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우승상금 1억원을 받은 최원준과 그의 아내 이지숙씨.  사진=이용휘 기자
우승상금 1억원을 받은 최원준과 그의 아내 이지숙씨. 사진=이용휘 기자

곧 4차 대회가 열리게 되는데, 2연승 기대해봐도 되겠나.

잘 치면 이기고, 못 치면 지는 거다. 욕심내지 않겠다. 매 게임 최선을 다하겠지만, 우승을 했다고 해서 내가 유력한 우승후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참가한 128명의 선수가 모두 최고의 선수들이다. 대진표만 봐도 숨이 막힐 정도다. 다른 선수들 치는 거 보면 아직도 배울 게 많다. 
 

마지막으로 다음 대회에서 꼭 만나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마음은 항상 쿠드롱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또 가장 피하고 싶은 선수이기도 하다. 3차 대회 때 우승을 해봤으니까 4차 대회에서는 한 번 만나서 그에게 도전을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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