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김민영 기자] 말 그대로 당구선수 김민아의 전성시대다. 

서울특별시장기 당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019년을 시작한 김민아는 연달아 열린 인제오미자배 3쿠션 페스티벌에서 조명우와 함께 출전한 복식과 여자부 단식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우승을 독식했다.

그 후 열린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대회와 무안황토양파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까지 대회마다 결승전에 오르며 2019년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KBF 슈퍼컵 3쿠션 토너먼트에서도 공동3위를 차지한 김민아는 올해 상반기 동안 열린 모든 대회의 시상대에 서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의 김민아가 있기까지 무려 10년의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심지어 당구대 위에서는 누구보다도 거침없는 그녀였지만 아버지에게는 9년 동안이나 당구선수라고 말하지 못하는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여자 3쿠션 당구선수 김민아의 당구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프로당구 열풍으로 많은 여자 3쿠션 선수들이 프로 당구 리그로 자리를 옮기는 이 시점에 누구보다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여자 3쿠션 선수임에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민아를 만나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미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요즘 당구선수 김민아의 기세가 무섭다. 당구선수로 데뷔한 지 10여년 만에 제대로 김민아 포텐이 터졌다. 우선 축하부터 하자. 

고맙다. 정말 의도치 않게 우연히, 그 흔한 동호인 대회 한 번 나가보지 못하고 여자 당구선수가 됐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요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작년부터 좋은 일이 많았다. 두 번째 당구실업팀인 실크로드시앤티 팀 영입을 시작으로 여자프리미어당구리그(WPBL) 합류까지 '당구선수 김민아'라는 이름을 당구팬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기분이 어떤가.

너무 감사하다. 그동안 DS빌리어드의 김용철, 오경희 대표님이 뒤에서 많이 애써주셨는데, 작년에 서울당구연맹 회장님과 부회장님의 추천으로 실크로드시앤티 소속 선수가 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이런 기회가 여자 당구선수들에게는 좀처럼 오는 기회가 아니라서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작년에 갑자기 WPBL이 생기고 국내 랭킹 우선 선발로 합류하게 됐는데, 첫 시도라 어떤 효과가 있을지 어떤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팀 성적도 좋았고, 전체 순위도 3위로 만족할만한 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 우연히 당구선수가 됐다고 했는데, 어떻게 당구선수가 되었나.

나는 대구에서 나서 쭉 대구에서 자란 토박이다. 대학교 때 당구 동아리에 들어가서 처음 당구를 접했다. 2010년쯤 중대에서 200점 정도 칠 때였는데, 자주 가던 당구장 사장님이 서울당구연맹 소속 선수셨던 분이시라 그분 추천으로 대구당구연맹 월례대회에 놀러 갔다가 선수 등록이 돼버렸다. 

 


- 당구선수가 되기 이전에 스포츠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원래 스포츠에 대한 재능이 있었나.

내가 운동선수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운동은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한테 피아노 대신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가 혼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여자인 저는 피아노를, 남동생은 태권도를 배우게 하셨는데, 남동생이 배우는 태권도가 너무 하고 싶었던 걸 보면, 스포츠를 좋아했던 것 같다. 


- 대구에서 서울로는 언제 올라왔나.

서울 온 지는 올해 6월로 3년째가 됐다. 


- 특별히 대구에서 서울로 이적한 계기가 있나.

DS의 오경희 대표님이 서울로 오라고 권유해 주셨다. 나의 당구인생에 있어서 DS의 오경희, 김용철 대표님은 내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들이다. 대구에 계속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성적을 내지 못했을 거다.

아마도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면서 당구를 해야 했을 텐데 일과 당구를 병행하게 되면 시합 일정도 다 소화하기 어렵고, 훈련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다.

오경희 대표가 "곧 DS 본점 오픈할 거니까, 민아야 너 올라와서 당구만 쳐라. 언니가 도와줄게"라고 약속을 해서 경희 언니랑 김용철 대표님만 믿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DS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용기 내지 못했을 거다. 


- 대회장에서 보면 오경희 대표가 항상 김민아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오경희 대표와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지게 된 건가.

예전에 서천에서 대회를 할 때였는데, 그 당시 다른 회사에서 큐 한 자루를 협찬받는 걸로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때 같이 선수로 활동하던 경희 언니가 어떤 후원을 받고 있는지,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묻더니 계약 만료되면 언니가 좋은 큐 주고, 훈련보조금도 주고, 공만 칠수 있게 해주겠다고 뜬금없이 말해서 깜짝 놀랐다. 따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나중에 언니한테 그때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그 당시 스무살 초반의 어린 선수였던 내가 언니 눈에는 잘 칠 거 같아 보였다고 하더라. 조금만 도와주면 네가 앞으로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리고 너 같은 어린 선수들이 어려움 없이 당구를 칠 수 있어야 당구도 발전하고, 선수들도 발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랬다고. 마침 DS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보니 문득 네가 보였다고 그러는데, 내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당구선수들은 남자 선수들에 비해 후원을 받는 게 어려운 실정이라 대부분의 선수들이 일을 하거나 클럽 매니저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대회 상금도 남자대회만큼 크지 않고, 그 수도 적기 때문에 오로지 선수 생활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든데, 나는 경희 언니를 만나서 잘된 케이스다. 걱정 없이 당구만 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다. 


- 서울로 이적하고 성적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다. 

매달 대구로 정기평가전을 하러 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자 서울연맹으로 이적을 했다. 게다가 서울연맹은 여자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여자 선수들끼리 시합하는 게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도 도움이 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구에서 이미 국내 여자 3쿠션 랭킹 2위였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서 적응을 못 해 1년 동안 랭킹이 7~8위까지 밀려났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앞으로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이제 일도 안 하고 여기서 당구만 열심히 치면 되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욕심이 마음의 짐이 되면서 오히려 성적이 안 나왔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니 조금씩 몸도 마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성적이 조금씩 나고, 3위 정도를 꾸준히 유지했다. 
 

작년에 열린 여자프리미어당구리그(WPBL)에 출전한 김민아는 개인 순위 3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민아가 속한 파워풀엑스팀은 대회 마지막날 챔피언 결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민아, 하야시 나미코, 이신영. 사진=빌리어즈 자료사진


- 그러다 WPBL에 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상승 궤도에 올랐다. WPBL의 경우 다른 대회와 다르게 관중 없이 스튜디오에서 매 경기 생방송으로 선수들끼리 대회를 치렀다.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에겐 그런 폐쇄적인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작은 소음까지도 신경이 쓰여서 숨 쉬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몸은 더 경직되고 오히려 경기력은 반감됐던 것 같다. 관중 없이 팀원들만 경기장에 있다 보니 팀원들 간의 팀워크가 대회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팀원들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 


- 하지만 생방송으로 전경기가 다 방송이 돼서 좋은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여자대회는 대회 촬영을 해도 결승전 경기만 방송 경기로 나가기 때문에 여자 선수들은 대중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거의 없는데, WPBL을 하면서 모든 경기가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유튜브에서도 실시간으로 방송돼 여자 3쿠션 선수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당구선수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 당구선수를 하면서 가족의 반대가 있었나.

솔직히 당구를 치면서 5년 동안 아버지한테 당구를 친다는 말씀을 못 드렸다. 그 뒤에 딱 한 번 당구선수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나한테 그런 얘기하지 마라. 니가 당구친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다"라고 완강히 반대를 하셔서 그 뒤로 아버지 몰래 당구를 쳤다. 가족들은 알고 있었지만, 나 때문에 덩달아 아버지를 속여야만 했다.  

그런데 WPBL에 나온 걸 아버지가 우연히 TV에서 보셨다. 아버지는 내가 서울에서 DS라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줄 알고 계셨다. DS에서 급여를 받고 4대 보험도 다 됐기 때문에 당연히 당구선수 그만두고 회사만 다니는 줄 알고 계셨다.

큰일 났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버지가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전화하셔서 이제는 반대 못 하겠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 보니까 대견하고 예전에 반대했던 거 미안하다고, 이제는 니가 하는 거 응원할테니 마음 편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덕분에 이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 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당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여자 당구선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나 또한 처음 시작할 때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당구를 쳐보니까 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예전에 당구를 가르쳐 주신 분이 말씀하시길, 남자가 낼 수 있는 스피드와 여자가 낼 수 있는 스피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여자가 구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적다고 하시더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당구는 섬세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여자가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주 일부분인 것 같다. 만약 남자만큼 스피드를 구사할 수 있는 여자선수라면 남자선수와 대등한 경기도 가능할 것도 같다. 


- 여자 선수와 남자 선수의 실력 차이는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남자 선수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안정적인 전성기를 누리는 데 반해 여자 선수들은 20대 전에 당구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다. 대부분 20대 이후에 당구를 치기 시작해서 10년 정도 훈련을 하고 기량이 어느 정도 오를 때쯤 되면 결혼을 하거나 임신과 출산을 하기 때문에 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근본적인 차이라면 남자와 여자의 근육량이나 이런 신체 조건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 여자 3쿠션 동호인들에게 3쿠션을 잘 치려면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는지 팁을 알려준다면.

예전에 아주 기본기부터 가르쳐야 하는 분을 레슨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게 대부분 여성동호인들은 하점자인데 공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다 보니 3쿠션을 더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았다.

만약 아직 중하점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론보다는 감각을 익히는 데 집중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시원시원하게, 빠르게, 공이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대한 감각을 충분히 익힌 후에 애버리지가 0.7점 정도 됐을 때 시스템이나 이론에 대해 심층적으로 훈련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쳐야 한다. 실력은 시간에 비례한다. 하루에 한두 게임 치고 연습량을 채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루에 4~5시간은 투자해야 실력 향상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느껴진다. 
 

인제오미자배 3쿠션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직후 카메라를 향해 깜짝 세레머니를 보이는 김민아. 사진=빌리어즈 자료사진


- 여자 3쿠션 대회가 많지 않다. 아쉬움이 클텐데.

재작년까지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여자 전국대회가 따로 있었다. 작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대회가 없어졌다. 그러면서 KBF에서 분기마다 1회씩 1년에 4번 정도 여자 대회를 따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작년에 약속을 못 지켰다. 그게 많이 아쉬웠다. 

올해도 연초 계획안에는 1년 동안 4번 여자대회를 한다고 되어 있던데 올해는 그 계획이 꼭 이뤄졌음 좋겠다. 그렇게 시작을 하면 여자 선수 대회도 조금씩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고 싶다. 


- 올해 이루고 싶은 일이 꼭 있다면.

랭킹 관리를 잘해서 올해는 꼭 세계선수권대회에 도전해 보고 싶다. 2016년도에 랭킹 2위로 구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간 이후로 2017년, 2018년에는 못 나갔다. 올해는 국내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꼭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도록 노력하겠다. 

올해로 벌써 서른이다. 여자 3쿠션 선수들 중에 또래 친구들이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과 어린 선수들은 많은데,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 없다 보니 뜻하지 않게 어린 후배들을 가르치는 게 내 몫이 되더라. 여자 선수들의 세대 간의 화합과 교류를 위한 역할을 내가 맡아서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 후배들에게는 어떤 선배인가.

후배들이 고민이 있으면 자주 연락을 해온다. 아마도 위에 언니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고민을 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상대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계속 후배들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 여자 3쿠션 선수로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요즘 PBA나 LPBA같은 프로 리그가 한창 이슈다. 당구가 프로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갑게 생각한다. 크게 봤을 때 뭔가가 시작돼서 당구가 발전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여자 선수들도 좀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다.

보는 시청자나 관중의 입장에서는 즐겨 찾아보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여자 선수들이 있으니까 LPBA든, KBF든 여자 선수들의 시합을 많이 만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저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겠으니 끝까지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곧 여자 3쿠션 세계 챔피언으로 인사드리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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